늦깎이 뇌과학자 김재익 씨(73·사진)는 지난 25일 서울 순화동 순화동천에서 열린 《의식, 뇌의 마지막 신비》 출간 간담회에서 “의식 연구야말로 인간 내면이자 본질을 탐구하는 것”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이 책을 쓴 김씨는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다. 서울대 공대 섬유과를 졸업한 뒤 제일모직 의류기획팀을 시작으로 일본과 프랑스의 유명 패션회사들을 오가며 오랫동안 패션업계에 종사했다. 은퇴 무렵인 60세 때 죽음에 이르렀다가 살아나는 ‘임사체험’과 육체를 떠난 의식, 이른바 ‘유체이탈’에 관심을 갖게 돼 뇌과학 공부를 시작했다. 서울대 자연대 뇌과학 석박사 협동과정에 들어가 70세 때 ‘뇌의 가소성과 노화’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의 박사학위 논문은 세계적 과학기술논문 인용색인(SCI) 저널에 게재됐다. 대부분 연구자가 은퇴할 나이를 훌쩍 넘긴 70세에 뇌과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경우는 세계적으로 드물다.
김씨는 “의식은 ‘깨어 있는 상태에서 자기 자신이나 사물에 대해 인식하는 작용’을 뜻한다”며 “의식을 연구한다는 것은 살아있음을 전제로 생명과 영혼이 있는 생명체의 미스터리를 탐구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의식, 뇌의 마지막 신비》에서 의식의 개념부터 의식과학의 역사, 의식의 신경과학적 분류, 의식의 미래 등 의식에 얽힌 다양한 쟁점을 정리했다. 저자는 “생명의 근본적 성질, 주관적 경험을 보유한 생명체의 내면을 탐구하다 보니 의식과 관련된 사회적·학문적 영역이 다양했다”며 “종교, 철학, 문학, 심리학, 신경과학, 생물학, 동물학, 동물행동학, 유전공학, 인지신경과학 등 많은 영역이 의식과 직간접으로 연관돼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특히 종교와 철학은 심리학과 신경과학을 대상으로 의식이 육체와 별개의 실체나 속성인지 또는 육체의 산물인지를 두고 많은 논쟁을 벌여 왔다”고 덧붙였다. 의식은 그 속성상 다른 과학처럼 객관적 자료를 대상으로 3인칭 관점에서 연구될 수 없는 내적·주관적 현상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독일 철학자 이마누엘 칸트를 비롯해 많은 정통 과학자가 “의식이 과학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미국에서도 행동주의의 영향을 받아 눈에 보이지 않는 의식연구는 과학적 태도가 아니라며 철저히 배격해 왔다”며 “하지만 의식은 어떻게든 뇌와 연관돼 있기에 중요한 연구 분야”라고 말했다.
알파고 등 바둑계 패러다임을 바꾼 인공지능(AI)에 대한 생각도 털어놨다. 그는 “바둑에서 AI는 인간이 상대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해졌지만 이는 정보처리에 불과하다”고 했다. “의식을 담당하는 시냅스나 뉴런(신경세포) 같은 뇌 속 하드웨어는 시시각각 끊임없이 변하고 또 발전합니다. 정보처리는 기계가 할 수 있죠. 하지만 사람처럼 질투나 희망, 욕망과 같은 희로애락을 가지고 끊임없이 변화하는 로봇이 존재하는 건 불가능합니다.”
은정진 기자 silve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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