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공포’가 확산되는 가운데 한국은행이 고심 끝에 2월 기준금리를 동결했다. 코로나19 파장이 전방위로 확산되면서 실물경제가 살얼음판이 됐다. 여기에 부동산시장 등도 염두에 둬야 하는 통화당국의 셈법은 복잡해졌다. 한은은 일단 경제주체에 폭넓게 영향을 미치는 금리인하보다 코로나19 사태에 직격탄을 맞은 중소기업에 대한 금융 지원에 나서는 ‘핀셋 지원(금융중개지원대출 한도 5조원 증액)’을 선택했다. 하지만 시장 전문가들은 이주열 한은 총재가 1분기 마이너스 성장률을 예상한 데다 지난 24일 문재인 대통령이 “비상한 경제시국에 대한 처방은 특단으로 내야 한다”고 강조한 것 등을 들어 오는 4월 기준금리 인하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이 총재 “선별적 지원 더 효과적”
한은은 코로나19 사태가 경제에 상당한 타격을 줬다고 봤다. 이 총재는 이날 금융통화위원회 직후 연 기자간담회에서 “앞으로 한국 경제에 가장 큰 어려움은 코로나19 확산”이라며 “과거 다른 어떤 감염병 사태보다 충격이 클 것”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이를 금리인하로 대응하는 것은 섣부르다고 봤다. 이 총재는 “최근 수요·생산 위축은 감염에 따른 불안심리에서 비롯한 것”이라며 “현시점에서는 금리인하보다 서비스업을 비롯한 취약 부문에 선별적으로 지원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고 설명했다.
기준금리를 내려도 부동자금만 불리고 소비·투자 등 실물경제 진작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도 깔려 있다. 이 총재는 이 같은 맥락에서 “주택 가격이 안정되지 않고 있다”고 수차례 강조했다. 한은에 따르면 현금과 현금성 자산을 의미하는 부동자금은 지난해 12월 말 기준 1045조5064억원으로 1000조원을 돌파했다. 지난달 말 은행 주택담보대출 잔액은 657조9000억원으로 전달보다 4조3000억원 늘었다. 지난달 증가폭은 역대 1월 기준으로 최대 규모다.
하지만 지난해 설비투자와 건설투자 등을 아우르는 총고정자본형성은 전년 대비 3.5% 줄었다. 외환위기를 겪었던 1998년(-20.5%) 후 감소율이 가장 컸다. 김광두 국가미래연구원장(서강대 석좌교수)은 이날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통화정책은 소비·투자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부동산 가격 상승과 가계부채 증가, 외화 유출 등 부작용만 키울 가능성이 높다”며 “구조개혁 노력을 먼저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기준금리(연 1.25%) 동결 결정은 통화정책의 ‘실탄’을 아끼기 위한 목적도 있다. 시장 전문가들은 한은의 실효하한 금리(유동성 함정이나 자본유출 등을 고려한 기준금리의 하한선)를 연 0.75~1.0%로 보고 있다. 현 기준금리를 고려할 때 0.25%포인트씩 한두 차례 인하카드를 쓸 수 있다는 얘기다.
“정책 공조 위해 늦어도 4월 인하”
한은이 코로나19의 경제적 파장과 경기둔화에 대한 깊은 우려를 밝힌 만큼 4월 금통위에서 기준금리를 인하할 것이라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이 총재는 “코로나19 사태로 향후 성장 경로의 불확실성이 높아졌다”며 “필요할 때 대응할 수 있는 통화정책 여력은 남아 있다”고 인하 가능성을 열어뒀다. 이날 금통위에서는 조동철·신인석 위원 등 금통위원 두 명이 ‘금리 인하’ 소수의견을 내기도 했다.
정부가 조만간 내놓을 추가경정예산(추경) 등 경제대책과 맞물리는 정책공조를 이루기 위해 늦어도 4월에 기준금리 인하에 나설 것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김상훈 KB증권 수석연구위원은 “1분기 경제지표가 심각하게 나빠지면서 부동산 가격을 비롯한 금융안정 이슈를 압도할 것”이라며 “재정·통화정책 공조 차원으로 4월 인하가 예상된다”고 봤다.
올해 두 차례 기준금리를 내릴 가능성도 제기된다. 연내 기준금리가 연 0.75%까지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김소영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잠재성장률 하락을 비롯한 경제 구조적 문제가 불거지는 가운데 코로나19 사태까지 겹친 복잡다단한 상황”이라며 “대출규제 등 거시건전성 정책으로 가계부채 증가세가 둔화될 가능성이 높은 만큼 한은이 1~2회 금리 인하로 경기부양에 나설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익환 기자 lovep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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