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동휘의 베트남은 지금] 한국의 코로나19 확산, 깊어지는 베트남의 고민

입력 2020-02-28 11:48   수정 2020-03-27 00:32


한국과 베트남의 관계는 순망치한(脣亡齒寒)에 비유할 수 있다. 삼성전자 베트남 단지가 가동을 멈추면, 베트남은 수출의 25% 가량을 잃는다. 한국은 베트남 최대 투자국(누적 기준)이다. 29일엔 삼성전자가 하노이 스타레이크 부지에 약 1억6000만 달러를 들여 R&D(연구·개발)센터를 착공한다. 베트남 관광 산업의 최다 고객도 한국이다. 한 해 500만명에 육박한다.

우리의 베트남 의존도 역시 날로 커지고 있다. 중국이 쫓아 낸 한국 기업들은 대부분 베트남에 새 둥지를 틀었다. 한식당, 학원, 여행사 등 수많은 한인 자영업자들도 기업을 따라 베트남으로 이동했다. 한국 조선소들은 고숙련 용접공을 베트남에서 구하는 추세다. KOTRA가 주도해 얼마 전 150명을 가려 뽑아 한국에 파견했다. 한국의 대형 요양병원 원장들은 간병인을 모집하기 위해 베트남을 찾는다. 최근엔 베트남이 IT 아웃소싱처로 부상 중이다. 호찌민엔 삼성전자와 계약을 맺은 반도체 디자인하우스도 있다.

한·베 관계에 비해 베트남과 중국의 관계는 ‘적과의 동침’에 가깝다. 제조업 기반을 육성하려는 베트남 정부에 중국은 늘 걸림돌이다. 우스개 소리로 이런 말이 있다. ‘중국산 공업용 줄자는 한 달 가고, 베트남산은 1주일이면 망가진다’. 게다가 중국산은 값도 싸다. 많이 생산할수록 제조업체는 값을 내릴 여력이 많은 법이다. 지난해 중국이 베트남 투자국 1위였고, 중국은 베트남의 제1 교역국임에도 베트남 정부가 늘 탈(脫)중국을 부르짖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베트남과 중국 공산당의 정치적, 경제적 내밀한 관계를 감안해야겠지만, 현 상황에서 양국은 여러모로 갈등 관계에 있다. 베트남의 동해를 중국은 남중국해라 부르며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 그곳은 엄청난 천연가스가 매장된 자원의 보고다. 캄보디아를 둘러싼 두 나라의 경쟁도 만만치 않다. 베트남은 캄보디아를 ‘아우의 나라’라 부른다. 약 2년 전만해도 앙코르 유적지 관리기업이 베트남계였다. 현재 캄보디아는 ‘중국의 우산’ 아래로 들어갔다. 중국이 사실상 그들의 영토로 만들어버린 캄보디아 시아누크빌은 베트남 남단의 휴양지 푸꾸옥과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 있다.

코로나19의 확산과 관련해 베트남이 한국과 중국에 대처하는 방식이 다른 건 이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중국에 대해선 하늘길과 국경을 모두 막는 전면 봉쇄 방식을 택했다. 거꾸로 베트남이 발병지였다면, 중국도 마찬가지 조치를 취했을 것이다. 최근 한국의 코로나19 확산이 진정되고 있지 않음에도 베트남은 전면 봉쇄를 택하진 않았다. 한국 역시 베트남에서 감염자가 속출해 빈푹성의 한 마을을 봉쇄했을 때 베트남인의 한국행을 막지 않았다. 당시 한국은 청정지역으로 꼽혔고, 베트남은 중국에 이어 두 번째로 특정 지역을 봉쇄한 나라로 거론됐다.

베트남 정부가 한국의 코로나19 확산에 대처하는 모습은 ‘그때그때 상황에 맞는 대응’ 혹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으로 요약할 수 있다. 한국인 입국을 전면 차단했다간 더 큰 피해를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베트남 정부가 발표한 조치들 중에선 한국인들의 반발을 사는 일이 발생하고 있다. 주민등록번호상 출생지가 대구·경북 지역이거나 여권 발행지가 대구·경북인 경우 입국을 제한한 조치가 대표적이다. 베트남 정부로선 코로나19 발생 이후 대구·경북을 다녀온 한국인이라는 것을 가려낼 길이 없자 고육지책으로 내놓은 해법이다. 주베트남 한국대사관 관계자는 “출생지가 아닌 거주지 증명으로 바꾸는 방안을 베트남 정부와 협의 중”이라며 “현재 베트남 출입국 관리소도 검역신고서 기재사항과 인터뷰를 통해 대구·경북 지역에 거주하지 않는 게 확인되면 입국을 허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구·경북 외 지역에서 입국한 한국인에 대한 검역 조치와 관련해서도 혼란이 빚어지고 있다. 응우옌 쑤언 푹 총리는 2월25일 외부로부터의 코로나19 유입에 대해 단호한 조처를 취할 것임을 발표했다. 이 조치로 한국인에 대해선 2월11일 이후 입국한 이들은 지역에 관계없이 공안과 의료진이 주기적으로 건강을 체크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같은 사실을 모르는 일부 교민 중에선 갑작스레 공안이 방문하자 검진을 거부하는 일도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다. 교민들이 모여 있는 단톡방엔 “남편이 열이 난다는 이유로 어딘가에 격리돼 있다”는 사연이 올라오기도 했다.

베트남 정부는 한국발 입국자를 최소화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한국에 거주하는 베트남 교민도 당분간 고향에 들어오지 못한다. 한국인의 경우 도착비자 발급을 중단하고, 신규 노동허가 발급도 중지한 상태다. 28일 자정을 기해 15일 무비자 체류도 임시 중단됐다. 이날 오후 2시 이후에 한국에서 들어온 비행기에 대해선 지역, 증상과 관계없이 군부대 등 시설에 격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주베트남 한국대사관 관계자는 “베트남 입국을 계획하고 있는 우리 국민들은 예측하지 못한 입국 불허, 출발지로의 되돌려 보내기, 시설 격리 등의 불편함을 겪을 수 있다는 점을 각별히 유념해 달라”고 당부했다. 사실상의 입국 불허인 셈이다.

다만, 대사관측은 반드시 베트남에 들어와야할 필수 인력에 대해선 노동허가를 내주는 방안을 베트남 노동부와 협의 중이다. 대사관 관계자는 “KOTRA, 코참(베트남 대한상공인연합회) 등을 통해 우리 기업들로부터 명단을 받아 베트남 정부에 제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베트남은 올 4월 3~5일에 하노이에서 ‘2020 포뮬러 원 월드 챔피언십’을 치른다.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 의장국으로서 각종 행사도 베트남에서 열릴 예정이다. 내년 공산당대회를 위한 각 지방성별 선거도 올해 치러진다. 코로나19의 확산은 베트남 정치, 경제에 치명적일 수 밖에 없다. 베트남의 대 한국 조치가 갈수록 강해지는 배경이다. 하지만 베트남도 이번 사태가 장기화될 경우 피해가 불가피하다. 비 온 뒤에 땅이 더 굳어진다고 했다. 한국과 베트남 모두가 이를 증명해 보일 때다.




박동휘 하노이 특파원 donghui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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