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심 부품 수급 차질과 고질적인 노사갈등에 이어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진 노동자 발생까지 자동차 업계가 올 들어 연이은 악재로 휘청이고 있다. 글로벌 자동차 업체들과 견줘 경쟁력 하락이 예상된다는 우려가 나온다.
2일 현대자동차에 따르면 지난달 28일 현대차 울산 2공장 근로자 1명이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다. 회사는 확진자가 발생하자 울산 2공장 가동을 전면 중단하고 확진자 동선을 중심으로 긴급 방역을 실시했다.
더 큰 문제는 추가 확진자가 나올 수 있다는 점이다. 울산 2공장 전체에는 매일 4000명가량의 근로자가 출퇴근 중이며 이번 확진자가 일하는 도장부에서만 약 300명이 근무를 하고 있다.
울산 2공장은 현대차의 팰리세이드와 제네시스 첫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GV80을 만든다. 팰리세이드는 지금 계약해도 최장 5개월을 기다려야 할 정도로 출고 적체에 시달리는 상황이다. GV80도 벌써 일년치 생산 목표를 달성해 소비자 인도까지 수개월이 소요된다. 이번 사태로 적체 기간은 더 늘어날 게 확실시 되고 있다.
근로자 감염 상황은 상용차에도 영향을 끼치고 있다. 현대차는 지난 25일 울산 4공장의 포터 생산라인 가동을 중단했다. 포터 적재함 철판(데크)을 납품하는 1차 협력업체 서진산업이 지난 24일 공장 문을 닫아서다.
서진산업은 지난 21일 집에서 숨진 채 발견된 직원이 코로나19 양성 판정을 받자 공장을 임시폐쇄 조치했다. 두 사례 모두 공장에서 부품을 생산해야 하는 근로자들이 확진 판정을 받아 재택근무도 불가능하다.
올해 자동차업계의 공장 가동 중단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배선 뭉치'라고 불리는 자동차 필수 부품 '와이어링 하니스(wiring harness)'의 수급이 원활하지 않아 문을 닫은 적이 있다.
이어링 하니스는 차량 전체에 인체 신경망처럼 설치돼 차량 내 전기 신호와 전력을 전달하는 부품이다. 설계 단계부터 차량에 맞게 제작되기 때문에 대체품을 찾기 어렵고 부피가 커 재고도 대량 확보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 부품은 제작 단가가 낮아 노동력이 저렴한 중국에서 90% 이상의 물량을 들여와 조립한다. 우리보다 앞서 코로나19로 홍역을 치른 중국에서 부품 공장들이 문들 닫은 탓에 국내 자동차 업체들 공장까지 모조리 멈춰섰다. 현대차, 르노삼성, 쌍용차, GM대우 모두 이 부품을 확보하지 못해 잇따라 공장 불을 껐다.
자동차 업계의 '신음'은 노사갈등 때문에 더 커지고 있다. 현대차는 팰리세이드, 그랜저 등 인기 모델의 적체가 길어지자 증산을 추진했지만 과정이 여의치 않았다. 자동차 업계는 유연 생산을 위한 노사 협의가 쉽지 않아 대량의 증산이 어렵다.
현대차는 지난해 초부터 팰리세이드가 폭발적인 인기를 끌자 기존 공장인 울산 4공장뿐만 아니라 울산 2공장에서도 물량을 대는 방안을 추진했다가 애를 먹고 겨우 합의를 봤다. 팰리세이드는 원래 월 6240대를 생산하다 월 8600대, 월 1만대로 두 차례 증산 과정을 밟았다.
르노삼성자동차는 다음달 신차 XM3 출시를 앞두고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 노사 관계가 변수다. XM3는 '생산 절벽'에 직면한 르노삼성에 '가뭄의 단비'와 같은 존재로 꼽힌다. 2016년 SM6와 QM6 등 '식스(SIX)' 시리즈 출시 이후 약 4년 만에 선보이는 새 모델이다. 회사의 명운을 짊어졌다는 이야기까지 나온다.
이런 상황에서 르노삼성 노조에서는 심상치 않은 분위기가 감지됐다. 노조는 지난 25일 발간된 소식지를 통해 노조원들의 파업 요구가 커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노조는 이를 반영한 쟁의대책위원회를 통해 지침을 결정한다는 계획이다. 업계에서는 향후 노사 관계가 더 악화할 경우 신차 출시 일정에도 차질이 불가피해 회사의 수익성이 크게 악화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업계 관계자는 "자동차 회사들이 안팎으로 쉽지 않은 상황"이라며 "메르세데스-벤츠, BMW가 한국을 전략적 요충지로 결정하고 올해부터 대거 신차 출시를 서두르고 있는 상황에서 뜻하지 않은 악재들이 연이어 발생하고 있다. 국내 자동차 업체들의 경쟁력 저하가 불보듯 뻔하다"고 말했다.
강경주 한경닷컴 기자 qurasoh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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