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필생의 업

입력 2020-03-01 18:29   수정 2020-03-02 00:07

손 글씨 쓸 일이 점차 줄어드니 가끔 쓰는 필체가 영 어색하다. 상가나 예식장에 가서 방명록에 적은 이름 석 자가 낯설 지경이다. 기억할 일이 있어 급히 몇 자 휘갈긴 내용을 제가 써놓고도 못 알아볼 때는 대략난감이랄까.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어 붓 펜을 챙겨 나름 서체를 가다듬어 보지만 어린 시절 가갸거겨를 쓸 때가 더 좋았지 싶다.

글씨 하면 떠오르는 옛날 얘기 한 토막이 있다. 어느 가난한 서생(書生)이 굶주림에 지쳐 꾀를 하나 냈다. 고을에서 첫째가는 부자가 좋은 글씨라면 사족을 못 쓴다는 소문을 듣고, 스스로 명필이라 칭하며 무턱대고 찾아갔다. 사랑방에 머물며 배불리 먹고, 등 따습게 자고 나니 대접받은 만큼 명품 글씨를 내놓아야 할 시간이 다가왔다.

‘벼루가 못마땅하다’ ‘붓이 손에 안 익었다’며 며칠은 보냈지만 핑계도 한계가 있는 법. 서생은 별별 궁리 끝에 도망갈 구멍을 찾지 못하자 결국 종이 앞에 앉았는데, 없던 재주가 하늘에서 떨어질 리가 있나. 붓 쥔 손을 부들부들 떨던 그는 눈을 감고 ‘한 일(一)’ 자 한 자를 그은 뒤 벌렁 쓰러져 그대로 세상을 하직하고 말았다.

재미는 여기부터다. 우연히 서생의 글씨를 본 감식가가 무릎을 치며 감동했다는 것. “한 인간이 마음을 비우고 혼을 바쳐 쓴 명작”이라는 설명이다. 부자는 이 걸작을 자신의 처소에 두고 늘 바라보며 심신 수양에 애썼다고 한다.

서예에 뜻을 두었던 분은 알겠지만 서실에서 제일 먼저 가르치는 한자가 ‘한 일(一)’ 자다. 쉬운 듯 가장 어렵다고 볼 수도 있다. 여백 또는 공백이 지배하는 화선지에서 한 호흡으로 공간 한가운데 띄우는 단순 필획은 쓰는 이의 공력을 엿보게 한다.

서법(書法)은 심법(心法), 글씨는 곧 마음의 표현이니 ‘한 일(一)’ 한 자에 목숨을 건 서생의 일화는 마냥 허구는 아니었을 것이다. ‘글씨는 바로 그 사람이다’는 말을 되새기게 한다.

필생의 업에 투신하는 이들을 만나면 마음이 정화되는 경험을 한다. 지난 주말, 한국문화의집(KOUS)에서 열린 ‘예인열전’ 무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탓에 듬성듬성 좌석이 빈 극장에서 문화관광부 장관을 지낸 김명곤 씨는 칠순을 바라보는 오늘도 꿈꾸는 광대가 좋다며 판소리와 벨칸토 성악의 만남을 시도했다.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 오른 해금 연주자 강은일 씨는 단 두 줄 찰현악기에 온몸을 바쳐 우리 시대의 모성(母性)을 노래했다.

시절은 위중하다지만 ‘이것이 바로 나다’를 좇아 쉼 없이 제 길을 걸어가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이성복 시인의 한마디가 느껍다. “길은 오로지 우리 몸속에 있다는 것을 깨달으며, 밀고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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