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거일 칼럼] 현 정권은 왜 중국에 집착하는가

입력 2020-03-01 18:45   수정 2020-03-02 00:11

우리 정부가 중국 눈치를 보다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을 최소화할 기회를 잃었다. 상황이 급박하니 중국인 입국을 막아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권고를 따랐더라면 중국의 유감을 덜 사면서 질병을 통제할 수 있었을 터다.

한국 정부가 중국의 눈치를 보는 것은 현 정권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방한을 기대하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있다. 그 해석이 이제는 상식이 됐다. 시진핑 방한과 같은 무대연출은 선전선동의 클라이맥스다. 총선을 앞둔 현 정권으로선 점점 무대연출에 집착하게 된다.

원래 현 정권이 총선에 맞춰 준비한 무대는 ‘반일(反日)’이었다. 한일청구권협정의 분쟁 해결 절차를 무시하고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판결’을 뇌관으로 삼아 일을 벌였다. 그러나 집권당 연구소가 ‘한·일 분쟁을 지속시켜야 총선에서 이긴다’고 평가했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반일 무대’는 썰렁해졌다. 내친김에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을 폐기해 미국 및 일본과의 동맹에서 벗어나 북한, 중국 및 러시아의 전체주의 연합에 가담하려 시도했지만, 미국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혀 체면만 깎였다.

다음 무대는 북한 지도자의 방한이었다. 현 정권은 정성을 들였지만,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등장할 가능성은 처음부터 적었다. 원래 전체주의 지도자들은 나라 밖으로 나가는 것을 꺼린다. 스탈린, 히틀러, 마오쩌둥, 김일성이 그 점을 잘 보여준다. 게다가 총선은 너무 사소한 계기다. 북한 지도자의 방한은 단 한 번만 쓸 수 있는 패다. 한 번 쓰면 ‘북한 지도자의 첫 방한’이라는 마법이 사그라진다. 두고두고 만지작거릴 수 있는 패를 총선에다 쓰겠는가?

그래서 나온 것이 ‘시진핑의 무대’다. 총선 직전에 그가 한국을 찾고 중국 관광객 몇백만 명이 따라 들어오는 광경을 상상하면서 현 정권은 황홀했으리라. 그 황홀한 상상이 너무나 생생해서 코로나19가 “곧 종식된다”는 얘기가 나왔을 것이다.

이것도 실은 이뤄지기 어려운 꿈이다. 시진핑은 한국만 방문하는 것이 자신의 격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여길 것이다. 중국을 찾은 문재인 대통령을 하대한 데서 그의 생각이 드러난다. 따라서 일본 가는 길에 잠시 들르는 방안이 현실적인데, 총선에 맞추려면 일본의 협력이 필요하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문 대통령에게 그런 배려를 할까? 어쨌든, 이제 시진핑이 중국 관광객들을 데리고 총선 직전에 오더라도 효과는 그리 크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현 정권은 시진핑 방한에 매달린다. 중국의 영향력이 워낙 크기 때문에 헛된 투자가 아니라는 계산일 터이다. 겉으로는 북한과의 관계를 개선하는 데 중국의 도움이 긴요하다는 것을 내세운다. 속으로는 현 정권과 중국 사이의 ‘관계(connection)’가 작용할 것이다. 미국 대통령 선거에 외국의 개입이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세상이다. 한국을 ‘뒷마당’이라 여기는 중국이 한국 정치에 개입하는 범위와 수준은 일반 시민의 상상력을 넘을 것이다. 한국의 외국인 입국 통제에 대해 지침을 서슴없이 내놓는 주한 중국대사의 태도에서 그 점을 실감한다.

총선에서 이겨 대한민국의 자유주의 체제를 변형시켜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현 정권 핵심의 판단이 총선에 결정적 중요성을 부여했다. 상황은 점점 현 정권에 불리해진다. 그래서 나온 것이 ‘총선 연기론’이다. 무대에 세울 배우가 없으니, 아예 공연을 중단한다는 얘기다. 좌파의 변두리 집단들이 먼저 바람을 잡는 것이 불길하다.

코로나19의 기세에 달렸지만, 이 방안도 쉽지는 않다. 현 정권의 핵심이야 총선에 운명이 달렸다고 여기겠지만, 좌파의 나머지 사람들은 그렇게 절박하진 않을 것이다. 특히 여당 공천을 받은 후보들은 생각이 다를 것이다. 현 정권의 몰락을 가속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무엇보다도 대한민국의 자유주의 체제에서 자유와 풍요를 누려온 시민들을 선전선동만으로 억압과 궁핍의 지옥으로 이끌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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