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칼럼] 내 몸속 '기생충'…살 빠지게 한다?

입력 2020-03-04 09:49   수정 2020-03-04 10:01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한 영화 ‘기생충’이 연일 화제다. 불현듯 과거의 환자가 농담처럼 던진 질문이 떠올랐다.

“선생님, 회충약을 안 먹으면 기생충 때문에 살이 빠진다면서요.”

당시엔 가볍게 넘겼던 질문이었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만큼 의료소비자의 다이어트 욕구가 절실했던 게 아니었나 싶다. 이번 칼럼에서는 화제가 된 영화 제목을 빌어 기상천외한 다이어트 이야기를 풀어보려 한다.

‘기생충 다이어트’. 이름부터 그로테스크하지만 놀랍게도 실제로 존재했던 다이어트다. 처음 이 다이어트 방법이 떠오른 것은 1930년대 미국에서다. 당시 ‘한 오페라 가수가 이를 활용해 톡톡한 효과를 누렸다’는 근거 없는 루머가 발단이었다. 이들은 소고기에 기생하는 촌충을 먹고, 목표체중에 도달하면 기생충 약을 복용함으로써 다이어트 여정을 마쳤다. 촌충 다이어트는 당연히 의학적으로 체중 감소에 도움이 되지 않으며, 건강에도 위험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같은 속설은 국내에서도 통했다. 실제로 ‘기생충에 감염되면 살이 빠질지도 모른다’는 속설이 퍼지기도 했다.

최근엔 일본에서 몸 속 특정 해충의 분비물이 지방을 연소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는 연구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2019년 4월)

일본 군마대와 국립감염증연구소의 공동연구 결과, 특정 기생충이 서식하면 체내 지방연소가 촉진돼 살이 빠지기 쉬운 체질로 바뀐다는 결과를 냈다. 이는 심지어 미국의 학술지(infection and immunity)에도 게재됐다.

연구팀은 일부러 살을 찌운 쥐들을 이용, 4주간 장내 기생충 감염 실험을 했다. 결과적으로 기생충에 감염된 쥐들은 감염되지 않은 대조군 쥐들에 비해 평균 20% 정도 가벼웠다. 혈중 중성지방 수치도 낮았다. 감염된 쥐는 건강이 악화되지도 않았다.

연구팀은 실험군과 대조군 모두 먹이 섭취량이나 건강상태에 차이가 없었다는 점에서 ‘에너지 대사량’에서 차이가 난 것으로 분석했다. 기생충이 장내 특정 세균을 늘려 지방세포 안에서 대사를 높이는 유전자가 많이 발현됐다는 주장이다.

국내에서도 비슷한 연구가 이뤄진 바 있다. 62명에게서 검출된 동해열두조충을 분석한 결과 체중 감소에 도움이 된다는 점이 발견됐다. 동해열두조충은 기다란 해충으로 최대 5m가 넘지만, 인체에서는 드물게 가벼운 복통만 일으킬 뿐 해롭지는 않다는 게 전문가들 의견이다.



하지만 다이어트를 위해 일부러 기생충에 감염될 이유는 전혀 없다. 기생충의 힘을 빌린 다이어트 효과는 실질적으로 봤을 때 극도로 미미하다.

인체에 흔히 기생하는 회충·요충 등은 크기가 무척 작고, 이들이 인체로부터 흡수하는 양분도 극도로 미미하다. 기생충들은 항문 소양증·빈혈·복통을 일으킬 뿐이다.

특히 2010년대 초반에는 중국 여대생들이 취업을 위해 ‘회충알’을 먹고 병원에 실려간 이야기도 보도된 바 있다. 이들은 부화하지 않은 회충의 알을 먹으면 다이어트에 효과가 있다는 말을 믿었다가 뱃속에서 회충이 한번에 부화해 병원에 실려갔다. 실제로 무분별한 기생충 감염은 장기를 막히게 하고, 자칫 폐까지 침입해 최악의 경우 사망에 이르게 한다.

늘 이야기하는 것이지만, 다이어트에는 왕도가 없다. 살을 빼고 싶다면 굳이 기생충을 몸속에서 기르는 것보다 꾸준히 운동하고 식단을 철저히 지키는 게 훨씬 효과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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