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을지로6가에서 옷가게를 하는 김모씨(59)에게 요즘 사정이 어떠냐고 묻자 한쪽에 수북이 쌓인 컵라면을 가리켰다. 그는 “하루치 판매대금으로는 밥값도 못 대다 보니 점심, 저녁을 컵라면으로만 때우고 있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5일 오후 을지로, 동대문의 의류 봉제 상가들은 철시를 앞둔 것처럼 적막했다. 중국인 등 해외관광객과 지방 도매상인, 소비자로 북적이던 골목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공포가 번진 이후 텅 비었다. 최저임금 급등 등 지난 2년간 각종 악재를 무릅쓰며 생계를 이어온 상인들은 “이번에는 더 이상 버티기 어렵다”는 말을 쏟아내고 있다.
“60년 장사하면서 요즘이 가장 힘들어”
광장시장에서 식료품 가게를 운영하는 우완호 씨(66)는 이날 물건 판 돈이라며 1만8000원의 꼬깃꼬깃한 현금을 펼쳐보였다. 오전 8시부터 나와 오후 3시께까지 번 돈이다. “문을 닫아두면 상권 회복이 불가능하니 억지로 앉아 있다”고 하소연했다.
인근 상인들은 코로나19가 확산되기 시작한 지난달 20일께부터 사람들의 발길이 완전히 끊겼다고 전했다. 옷가게를 운영하는 서영자 씨(85)는 “하루 종일 바지 한 개 팔기가 힘들다”며 “스물두 살 때부터 여기서 장사했는데 이런 적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그는 “인근 상가들도 열흘째 문을 닫아놓고 있는 곳이 많다”고 했다.
코로나19의 직격탄을 맞은 대구는 상권이 초토화됐다. 대부분 상인이 감염 우려 등으로 문을 닫으면서 최대 번화가인 동성로와 중앙로 일대에도 문을 연 상가가 20~30%에 불과했다. 이 같은 부담에도 일부 상인은 가게 문을 열었다. 구두가게를 운영하는 김모씨는 “임차료와 생활비를 조금이라도 벌 수 있을까 하는 기대에 감염에 대한 두려움을 뿌리치고 나왔다”고 말했다. 본사의 영업시간 규정을 준수해야 하는 편의점도 문을 닫지 못하고 있다. 한 편의점주는 “대구는 24시간 문을 열어놓는 것이 의미가 없어진 상황”이라며 “한시적으로라도 본사에서 관련 기준을 완화해줄 필요가 있다”고 했다.
책상은 물론 바닥까지 특례보증 서류가 쌓인 대구신용보증재단의 각 지점도 이 같은 어려움을 보여준다. 보증을 시작한 지난달 13일 이후 신청 건수가 5000건에 육박하다 보니 미처 전산 입력을 하지 못한 1000여 건은 신청서 그대로 쌓아놓은 것이다. 지금 신청해도 24일 이후에나 제대로 된 상담이 가능한 실정이다. 양희철 대구신보 사업전략부 부장은 “평소의 20배에 달하는 상담 신청이 폭주하고 있다”고 전했다.
점심 장사도 사라진 식당가
주요 상권 식당가는 재택근무 확산에 따른 영향을 받고 있다. 안 그래도 주 52시간제 시행으로 저녁 매출이 떨어진 와중에 직장인들이 자취를 감추자 점심 장사마저 어렵게 됐다는 설명이다.
서울 중구에서 칼국수집을 운영하는 장경화 씨(63)는 “새벽 6시부터 나와 장사했지만 오후 4시께까지 10그릇을 겨우 팔았다”며 “평상시의 10분의 1도 안 되는 수준”이라고 했다. 세운상가 인근에서 고깃집을 운영하는 이모씨는 지난주부터 저녁 장사를 아예 접었다. 저녁 약속을 잡는 사람이 크게 줄다 보니 인건비도 뽑지 못하게 됐기 때문이다. 8시간씩 일하던 종업원 두 명의 근로시간은 절반으로 줄였다. 이씨는 “세 명이던 종업원의 인건비를 감당하기 힘들어 지난해 한 명을 줄였는데, 코로나19 사태가 오래가면 또 내보내야 할 판”이라고 토로했다.
편의점, 슈퍼마켓 등 생활잡화를 판매하는 자영업자는 상대적으로 상황이 낫다. 재택근무가 늘고 외출을 꺼리지만 생필품은 사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반적인 이동이 감소해 지난달 매출은 1년 전보다 10~20% 정도 줄었다는 것이 대체적인 평가다.
자영업자의 매출이 크게 줄어든 데 비해 대출 신청 건수는 가파르게 늘고 있다. 김지운 전국편의점가맹점협회 사무국장은 “이번 시기만 잘 버티면 영업환경이 더 이상 나빠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희망을 정부가 심어줘야 한다”며 “두 달 앞으로 다가온 내년 최저임금 결정 때 정부가 전향적으로 인상폭을 낮추는 등 정책 방향에서 긍정적인 신호를 보내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노유정/노경목 기자/대구=오경묵 기자 yjro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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