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대응하기 위해 11조7000억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안을 편성했다. 여기에 드는 돈의 88%(10조3000억원)는 적자 국채를 발행해 조달한다. 이에 따라 올해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41.2%)는 사상 최초로 40%를 넘어서고, 관리재정수지(-4.1%)는 외환위기 때인 1998년(-4.7%) 이후 22년만에 처음으로 -4%대로 추락하는 등 재정건전성이 크게 악화된다.
정부는 4일 임시국무회의를 열어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추경안을 확정하고 5일 국회에 제출하기로 했다. 지난달 24일 문재인 대통령이 추경 편성을 지시한 지 열흘만에 정부안을 마련했다. 여야는 2월 임시국회 마지막날인 이달 17일까지 추경안을 처리할 계획이다.
정부는 전체 추경 금액 중 8조5000억원을 코로나19 대응 사업에 투입하고, 나머지 3조2000억원은 세입경정에 쓰기로 했다. 자동차 개별소비세 70% 인하 등 추가 세금감면 등으로 인해 세수 결손이 예상되자 당초 예상한 국세수입 규모를 낮춰잡고 그만큼 적자 국채로 메우기로 한 것이다.
코로나19 대응사업은 △방역체계 보강 2조3000억원 △중소기업·소상공인 지원 2조4000억원 △민생·고용안정 지원 3조원 △대구·경북 등 지역경제 회복 지원 8000억원 등으로 짰다. 음압병실을 확충하는 등 감염병 대응역량을 끌어올리고 의료기관 손실을 보상해주는 데 예산을 대거 투입한다. 중소기업과 소상공인 긴급경영자금 대출을 2조원 늘리고, 230만명에 달하는 저임금 근로자를 계속 고용하는 영세사업장에 1인당 7만원씩 임금을 보조해준다.
저소득층과 노인, 아이를 기르는 가정에 지역사랑상품권도 뿌린다. 기초생활보호대상자 138만 가구에 3~6월(4개월치)중 매달 17만~22만원(2인 가구 기준)씩 모두 8506억원어치 상품권을 준다. 같은 기간 만 0~7세 아동(263만명)을 기르는 가정에도 아동 1인당 월 10만원씩 상품권을 지급한다. 월 27만원짜리 '노인 일자리 사업' 참여자 보수도 4개월 동안 32만9000원으로 22% 올려준다.
전문가들은 추경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다음달 총선을 겨냥한 '선심성 예산'이 반영됐다고 지적한다. 아동수당 수급자들에게 추가로 상품권을 주는 게 대표적인 예다. 소득에 관계없이 만 0~7세 아이를 기르는 가정에 무조건 아동 한명당 월 10만원씩 주는 아동수당은 '출산율 제고'라는 정책 목표는 달성하지 못한 채 재정만 낭비하는 '퍼주기 복지'의 대표 사례로 꼽힌다. 코로나19로 인해 초·중·고교도 휴교를 했는데 어린이집이 쉰다는 이유로 현재 아동수당을 받고 있는 이들만 콕 집어 1조원 어치 상품권을 추가로 주는 건 형평성에 어긋날 뿐 아니라 코로나19 대책으로도 부적절하다는 지적이다.
소비쿠폰 살포 시점도 문제라는 지적이다. 정부는 내수를 살리기 위해 추경이 국회에서 통과되는 즉시 소비쿠폰을 뿌리기로 했다. "정부 한쪽에선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사회적 거리 두기'를 호소하는데, 다른 한쪽에선 '상품권 줄테니 전통시장 등에 가서 쓰라'는 상반된 메시지를 국민에게 건네는 꼴"(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이란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김소영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추경은 재난급 위기를 극복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하는데 일반적인 복지 정책을 덕지덕지 붙인 측면이 있다"며 "코로나19 종식을 앞당기는 게 현 시점에서 최고의 경제대책이란 점에서 바이러스 확산을 부를 수 있는 상품권 지급 시점은 3월이 아닌 코로나19가 어느정도 잡힌 뒤로 늦춰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오상헌/성수영 기자 ohyea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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