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포럼] '코로나 대응' 로마 현장지휘권을 배워야

입력 2020-03-04 17:17   수정 2020-03-05 00:06

우문현답(愚問賢答), ‘어리석은 질문에 현명하게 답한다’는 고사성어가 ‘우리의 문제는 현장에 답이 있다’는 식으로 풍자돼 종종 사용된다. 분야를 막론하고, 후선에서 보고만 받아서는 상황 파악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실효성 있는 대책을 도출하기 어렵다. 기업인의 시장 관찰, 군대 지휘관의 전장 정찰, 행정가의 일선 시찰이 모두 현장에서 답을 찾기 위한 출발점이다.

서양 문명의 근간을 이룬 고대 로마 제국의 성공 원인으로 ‘현장을 중시하는 전통’을 꼽는다. 군대 지휘관에서 시작된 관행은 사회·경제적 제도로 이어졌다. 로마에서는 전쟁터로 떠나는 총사령관에게 원로원의 결의로 절대지휘권을 부여했다. 전투 행위는 물론 전쟁과 관련한 모든 문제에 대한 사실상 무제한의 의사결정권이었다. 가령 적국과의 강화협상에서도 본국 의사결정기관인 원로원과 민회는 강화 조건에 찬반 의사를 표시할 뿐이었다. 지휘관은 절대지휘권을 바탕으로 군대를 강력하게 통솔하고, 전장에서는 본국의 정치적 상황을 무시하고 철저히 전투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이런 관행은 다른 분야에도 확산돼 리더십의 누수를 최소화하면서 조직력을 극대화했다. 권한을 주면 책임도 함께 느끼기 마련이므로 유능한 사람일수록 적극적으로 행동하게 되고 무능한 사람은 곧바로 실체가 드러나게 된다. 로마는 2000년 전에 이미 ‘책임경영’을 실천하고 있었다. 여러 대륙에 걸친 넓은 권역에서 ‘팍스 로마나(Pax Romana)’, 즉 로마의 평화가 수백 년간 유지된 것은 이런 책임경영 시스템으로 다양한 지역에서 일어나는 각종 문제에 유연하게 대처하는 능력에 힘입은 바 크다.

16세기 초반 이탈리아 정치사상가 마키아벨리는 르네상스 시대의 피렌체에 대해 “장군들이 전장에서 대포 하나를 배치할 때도 일일이 본국에 보고한 후 지시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상황 변화에 재빨리 대응하기 힘들고 지휘관의 역량도 발휘될 수 없다”고 평가했다. 즉 현장과 떨어진 본국의 정치인들이 갑론을박하면서 시시콜콜 간섭하는 동안 승리의 기회를 놓치게 되고, 패전에 대한 책임 소재도 불분명해진다는 의미다. 마키아벨리는 현장 책임자에게 절대적 권한을 주고 책임도 함께 묻는 로마의 좋은 관행을 따라야 마땅하다고 주장했다.

로마의 현장 지휘권을 다시 생각하게 된 계기는 최근 전염병에 대처하는 정부와 정치인들의 혼란상이다. 중국 우한에서 발생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응 과정에서 현장은 실종됐다. 중요한 의사결정에서 과학과 전문가에 기반하지 않고 정치인과 문외한들의 무분별한 언행만 두드러진다. 대한의사협회가 일곱 차례에 걸쳐 초기 방역을 위해 감염원 지역인 중국인의 입국금지를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정부 내 실무부서인 질병관리본부에서도 중국인 입국금지의 필요성을 제기했으나 묵살됐다고 한다.

현장 전문가들의 의견이 경시되는 한편으로 정치인들은 물을 만난 고기처럼 활개치면서 자신을 부각하려 한다. 관할 지역의 방역이 주요 업무인 일부 지방자치단체장까지 나서서 본업은 제쳐놓고 정치적 존재감을 보이려 좌충우돌하는 볼썽사나운 모습까지 연출된다. 이들은 모두 문제 해결에 도움을 주기는커녕 혼란과 불안감만 증폭시키고 있을 뿐이다.

감염자가 늘어나면서 대응체제를 질병관리본부에서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로 확대 개편했지만 효과적인 컨트롤타워와는 거리가 있다. 오히려 형식만 격상되면서 현장과 괴리된 비전문가들의 탁상공론과 실효성 없는 대책만 남발되는 느낌이다. 범정부적 역량이 결집됐다는 조직에서 방역의 기초물품인 마스크와 방호복 공급 부족에 효과적으로 대처하지 못하는 상황이 모든 것을 말해준다.

문제가 발생하면 현장 경험과 전문가의 지식이 해결의 출발점이다. 비록 조직의 상급자일라도 비전문가라면 현장에 있는 전문가들의 의견을 경청하고, 이들이 전문가적 판단으로 대처하도록 지원하는 역할에 중점을 둬야 한다. 현장 책임자에게 강력한 권한을 주고 사안에 대처한 로마의 전통과 제도의 의미를 되새겨봐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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