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는 빨리, 개선은 늦장"…속도차에 걷어차이는 개미들 [공매도 팬데믹]

입력 2020-03-11 08:23   수정 2020-03-11 09:31



[편집자주] 공매도는 국내 증시에서 수년째 '뜨거운 감자'다. 코로나19에 따른 급락장세에 공매도 폐지 목소리는 다시금 커지고 있다. 금융감독원은 최근 '홍콩식 공매도 지정제' 도입이라는 카드를 꺼내들었다. 금융위원회는 난색을 표하는 등 금융당국도 엇박자다. <한경닷컴>은 반복되는 공매도 논란과 시장 안정화 방안을 들여다봤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자본시장 안정화에 대한 촉구가 잇따르고 있다. 최근 주식시장이 급락하자 정부는 부랴부랴 3개월 간 공매도 과열종목 지정을 확대하고, 공매도 금지기간을 늘리기로 했다.

코스피지수가 올 1월 기록한 고점에서 약 14% 폭락한 이후 나온 '소 잃고 외양간 고친' 대책이다. 이마저도 한시적이라 개인 투자자들의 불만을 잠재우기는 역부족이란 목소리가 나온다. '기울어진 운동장'을 만든 근본 원인인 개인의 공매도 접근성 개선에 대한 논의도 빠져 있다.

공매도를 비롯한 다른 시장 안정화 방안들의 추진 속도는 여전히 더디기만하다. 반면 대주주 과세 요건 강화 등의 시행은 발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시장 밖으로 개미(개인 투자자)들을 걷어차고 있다는 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11일 기획재정부와 금융투자업계 등에 따르면 기재부는 올 상반기까지 자본시장 선진화를 위한 금융세제 종합 개편방안을 마련할 방침이다. 관련 법 개정과 시스템 구축 등을 감안하면 연내 시행은 어렵다는 게 중론이다.

국세청 관계자는 "아직 구체적인 세제 개편안이 나온 것이 아니기 때문에 현재 언급되는 제도들이 곧바로 적용될 수 있을지 단언하기 어렵다"며 "실제 개편안이 나오면 준비기간을 거쳐 실무적 절차에 돌입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세제 개편 방안의 핵심은 여러 금융투자 상품별로 발생한 손실과 이익을 합쳐 계산한 뒤 세금을 물리는 포괄적 손익통산과 과거 손실을 이월해 현재 손익에서 차감해주는 손실이월공제 등이다.

◆ "공매도는 글로벌 스탠다드…손익통산은 마이 웨이"

그동안 금융투자업계는 수년여 간 건전한 장기투자 환경 조성을 위해 과세체계 개편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해왔다. 조세제도의 기본 원칙은 '소득이 있는 곳에 세금이 있다'는 것이지만 국내 자본시장에서는 이에 어긋나는 경우가 빈번하다. 공매도 폐지는 세계 주요국의 기준(글로벌 스탠다드)과 맞지 않아 힘들다면서, 과세는 '마이 웨이'다.

포괄적 손익통산은 각 금융상품에 세금을 부과하지 않고, 모든 상품의 손익을 합해 순소득에만 과세하는 것이다. 손익통산 허용범위를 확대하면 국민들의 금융투자상품 분산투자 활성화를 유도할 수 있다. 부동산 투자 쏠림 현상을 줄일 것으로도 기대된다.

현재는 여러 펀드에 투자해 전체적으로 손실을 입더라도 한 개의 펀드에서 수익이 나면 그 수익에 대해 세금을 떼간다. 예를 들어 A펀드에서 300만원의 이익을 내고 B펀드에서 400만원을 잃은 경우 현재는 A펀드에서 번 돈에 대한 세금을 내야 했다. 하지만 손익통산이 적용되면 100만원의 손실을 본 것으로 계산해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된다.

이월공제제도는 특정 과세연도에 금융투자 순손실이 발생하는 경우 해당 투자손실을 다음 과세연도에 발생한 투자 순이익과 합산하는 제도다. 지난 해에 1억원을 손해보고 올해 5000만원의 이익을 냈다고, 5000만원에 세금을 물리면 안 된다는 것이다. 합산해 5000만원 손실로 보고 과세하지 말자는 얘기다.

미국은 증권, 파생상품, 펀드, 국외주식 등 금융투자상품 전반에 대한 포괄적 손익통산 제도를 갖추고 있다. 양도손실이 주식, 파생상품, 국외자산 등 자산별로 구분해 계산되는 국내 소득세법과 다르다. 아울러 손실 이월공제를 무기한으로 허용하고 있다. 손실을 만회할 때까지 세금을 면제받을 수 있다.

일본은 주식·채권·펀드의 매매 손익과 이자·배당소득을 모두 합산하는 방식으로 과세 체계를 간소화했다. 전체 투자 금액에서 손실이 발생한 경우 다음 3년 동안 투자 수익에서 공제한다. 올해 투자로 1000만원의 손실을 봤다면 내년에 300만원 수익을 내더라도 세금을 매기지 않는다.

여기에 우리나라는 주식을 손해보고 팔더라도 증권거래세를 내야 한다. 미국과 독일, 일본은 증권거래세가 없다. 중국과 홍콩 등 증권거래세가 있는 국가들도 한국보다 세율이 낮다.

◆ 돈 걷는 데는 독수리, 개선은 거북이

더딘 자본시장 안정화 방안의 추진과는 반대로 과세 범위 확대는 속도가 빠르다. 다음 달부터는 주식 차익매도 시 양도소득세를 내는 대주주의 요건이 강화된다. 4월부터 세법상 대주주는 코스피·코스닥 종목별로 10억원 이상의 주식을 보유한 사람이다. 기존에는 15억원 이상이었다. 내년부터 이 기준은 3억원까지 급격히 내려간다.

현재 일반 주주는 주식 매매 시 증권거래세는 내지만 양도 차익에는 세금을 내지 않는다. 다만 세법상 대주주가 되면 차익에 대해 최대 27.5%(지방세 포함)의 양도세가 부과된다.

이로 인해 연말이 되면 대주주 과세 요건을 회피하려고 보유 주식을 대량 매도하는 한국만의 투자 관행이 만들어졌다. 투자손실 이연 공제가 허용되지 않아 과세 연도 내에서 손실을 확정하기 위한 매도를 하는 등 왜곡된 절세 행태도 나타나고 있다. 자본시장 과세 체계 정비가 미흡해 발생하는 문제라는 지적이다.

김갑래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자본손익통산과 이월공제를 폭넓게 허용하면 혁신성장을 위한 모험투자를 활성화할 것"이라며 "국민자산 증식을 위한 장기투자 및 분산투자를 촉진하는 정책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차은지 한경닷컴 기자 chachach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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