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2곳서 사외이사 하고 있는데…기업들 "우리 회사 맡아달라" 러브콜

입력 2020-03-05 17:13   수정 2020-03-06 01:49


A씨는 이미 두 곳의 기업에서 사외이사를 하고 있다. 그런데 이번에 또 다른 회사에서 사외이사를 맡아달라는 연락을 받고 행복한 고민에 빠졌다. 새 사외이사를 구하려는 기업이 늘면서 현 정부 고위직 출신들도 기업 주변을 맴돌고 있다. 올 들어 사외이사 임기 제한 규정이 강화되면서 사외이사 구하기가 힘들어져 생긴 현상이다.

5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현대백화점은 고봉찬 서울대 경영대 교수를 신임 사외이사 후보로 추천했다. 그는 현대차증권과 신도리코 사외이사를 맡고 있다. 현행 상법상 사외이사는 상장사와 비상장사 구분 없이 최대 두 곳까지 겸임할 수 있다. 고 교수는 오는 25일 열리는 현대백화점 주주총회에서 신임 사외이사로 선임되면 현대차증권과 신도리코 사외이사 중 하나를 그만둬야 한다. 고 교수의 현대차증권과 신도리코 사외이사 임기는 각각 2023년 3월, 내년 3월까지다. 현대백화점 관계자는 “기존 사외이사들의 임기와 사외이사 후보자들의 전문성을 고려해 고 교수를 새 사외이사 후보로 추천했다”고 말했다.

사외이사를 구하기 어려워진 것은 지난달 개정된 상법 시행령 때문이다. 한 기업의 사외이사 임기가 최대 6년으로 제한되면서 사외이사 교체 수요가 증가해 ‘사외이사 구인난’이 심해졌다.

한진그룹의 지주회사인 한진칼에선 이런 사례가 더 많다. 한진칼은 오는 27일 열리는 주총에서 사외이사 수를 4명에서 8명으로 늘리기로 했다.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측이 3자연합(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KCGI·반도건설)과 벌이는 경영권 분쟁에서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해 현 경영진에 우호적인 이사를 더 많이 선임하기 위한 조치라는 분석이다. 이에 맞서 3자연합도 우군이 될 사외이사 후보를 추천한 뒤 주총 표대결에서 승리해 최종 선임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 과정에서 다른 회사의 사외이사들이 대거 추천됐다. 조 회장 측이 사외이사 후보로 추천한 김석동 전 금융위원장(SK텔레콤, 현대캐피탈)과 박영석 자본시장연구원장(SKC, 롯데정보통신), 이동명 전 의정부지방법원장(동양, DPC)은 이미 각각 다른 기업 두 곳의 사외이사로 일하고 있다. 3자연합이 사내이사 후보로 추천한 김신배 전 SK 부회장도 포스코와 푸르덴셜생명 사외이사를 맡고 있다. 대한항공 사외이사 후보로 추천된 정갑영 전 연세대 총장은 CJ대한통운과 SK브로드밴드 사외이사로 활동 중이다.

(주)LG와 두산인프라코어, 현대위아, 한화생명, 한화투자증권 등도 기존에 다른 기업에서 사외이사로 일하고 있는 인사를 또다시 사외이사 후보로 추천했다. 경제계 관계자는 “사외이사 임기 제한으로 기업들이 사외이사를 구하기 어려워지자 다른 기업에서 사외이사로 오랜 기간 일해 검증된 인사들을 데려오기 위해 적극 나서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부 고위직 출신을 사외이사로 영입하려는 기업도 적지 않다. 삼성물산은 노무현 정부에서 노동부 차관을 지낸 정병석 한양대 경제학과 특임교수를 신임 사외이사로 내정했다. 삼성SDI는 문재인 정부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 상임위원으로 일한 박태주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 선임연구원, 국가인권위원회 비상임위원을 지낸 김덕현 법무법인 진성 변호사를 사외이사 후보로 추천했다. 예종석 전 문재인 대선캠프 홍보본부장과 김춘순 전 국회예산정책처장은 각각 LS와 종근당홀딩스 신임 사외이사로 내정됐다.

정인설 기자 surisur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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