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나리 우물가에 사랑 찾는 개나리 처녀~'…향촌사회 두레박 타고 흐르는 '정분'

입력 2020-03-06 17:41   수정 2020-03-07 02:06

‘개나리 처녀’ 노래 배경지는 들녘 양지바른 논두렁 아래 새파란 푸성귀가 방실거리는 봄날이다. 개나리꽃은 봄의 첫 번째 전령이다. 이 화신(花信) 전령을 노래한 곡이 바로 ‘개나리 처녀’다. 이 노래를 부를 당시인 1958년 최숙자는 17세였다. 수줍은 열일곱 처녀, 그녀의 간드러진 목소리와 구성진 가락이 어우러져 6·25전쟁 이후 일그러지고 상처난 민초들의 가슴을 혼곤하게 녹여줬다.

‘개나리 우물가에 사랑 찾는 개나리 처녀/ 종달새가 울어울어 이팔청춘 봄이 가네/ 어허야 얼씨구 타는 가슴 요놈의 봄바람아/ 늘어진 버들가지 잡고서 탄식해도/ 낭군님 아니 오고 서산에 해지네’(1절)

대개 우물가에는 수양버들이 늘어져 있는데, 이 노래의 우물가에는 노란 개나리가 피어 있다. 그 우물가에서 서산 해가 질 때까지 서낭당을 바라보며 오지 않을 낭군님을 기다리며, 마음 졸이는 아낙네의 서정이 한 폭의 수채화처럼 눈에 선하다. 봄으로 나아가는 해맑은 오늘, 하염없이 지는 서산의 해를 바라보며 떠나간 낭군님은 언제 올지 소곤소곤 귀엣말로 여쭤봄은 어떠실지.

최숙자는 1957년 가수로 데뷔했다. 이후 1977년 미국으로 이민을 가서 2012년 1월 6일 향년 71세로 유명을 달리했다. 1960년대 ‘눈물의 연평도’ ‘모녀기타’ ‘처녀 뱃사공’ ‘개나리 처녀’ ‘갑돌이와 갑순이’ 등이 히트곡이다. 그는 1964년 ‘동백아가씨’ 노래 음반녹음을 이미자보다 먼저 제안받았다. 하지만 녹음은 딸 정재은(1964년생)을 임신하고 있던 만삭의 이미자에게 넘어간다. 이렇게 부른 ‘동백아가씨’는 발표 후 35주 동안 ‘인기 대박’을 치며 이미자를 ‘엘레지의 여왕’으로 만들어줬다. 음반 100만 장 판매와 임신가수 대박설을 낳기도 했었다.

‘개나리 처녀’ 노랫말에 등장하는 우물은 마을 동네 한가운데나 마을 어귀에 있던 공동우물터를 말한다. 이곳에는 물을 길어 올리던 두레박이 있었다. 이것으로 뜬 물을 물동이에 이고 나르던 아낙네들의 모습을 그린 그림이 조선 후기의 화가 단원 김홍도(金弘道, 1745~?)의 풍속도 화첩에 수록된 ‘우물가’다. 길 가던 나그네가 우물가에 와서 물을 얻어 마시는 장면을 그렸다. 가슴을 풀어헤친 채 두레박의 물을 벌컥벌컥 들이켜고, 두레박을 건넨 아낙네는 부끄러워 얼굴을 돌리고 있다. 우물가에 모인 사람들의 다양한 표정을 실감나게 표현했다.

두레박은 두룸박·드레박·타래박이라고도 한다. 두레는 농촌에서 농사일을 공동으로 하기 위해 향촌주민이 마을·부락 단위로 둔 공동노동조직이었다. 이 두레의 임원은 덕망 있는 사람 한 명을 지정해 통솔자인 행수(行首)로 하고, 보좌 격으로 도감 한 명, 작업을 진행하는 수총각 한 명, 두레꾼을 감시하는 조사총각 한 명, 기록과 회계를 맡은 유사서기 한 명, 방목지의 가축을 돌보며 가축으로부터 논밭을 보호하는 방목감 한 명을 뒀다. 재료는 박바가지를 그대로 쓰거나 양철 또는 판자를 짜서 만들었다. 긴 끈을 매달았지만, 긴 대나무나 작대기로 자루를 박아 쓰기도 했다. 흘러간 유행가를 오밀조밀 음유해보면 우리네 선조들의 삶이 펼쳐진다.

유차영 < 한국콜마 전무이사·여주아카데미 운영원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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