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은평구 블로그에 게시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의 이동경로다. 8일 7000명을 넘어선 코로나19 확진자는 모두 비슷한 방식으로 감염 사실 확인 전 며칠간의 행적이 공개되고 있다. 익명 처리돼 있지만 당사자의 코로나19 확진 사실을 아는 주변인들은 누군지 모를 리 없다. 불륜 사실이 들통나는 이도 있고, “이럴 때 조심성 없이 돌아다녔다”며 여론의 뭇매를 맞기도 한다. “범죄인의 사생활도 이렇게 함부로 다루진 않는다”(이준석 미래통합당 최고위원)는 말이 틀리지 않다.
확진자 발표의 통과의례가 된 이동경로 확인은 2015년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 당시만 해도 불법이었다. 이후 관련 법 개정으로 지금은 질병관리본부가 카드 결제내역까지 수시로 확인할 수 있다.
이처럼 감염병에 대한 정부의 대처능력은 여러 경험을 거치며 강해진다. 그리고 강한 대처능력은 상당 부분 시장과 개인 등 민간의 자유를 줄이고 공공의 재량권을 확대하는 과정에서 얻어진다.
전염병과 인류의 기나긴 투쟁을 돌이켜보면 개인의 권리가 제한되는 일은 흔히 있었다. 페스트가 유행하던 14세기 이탈리아 밀라노는 “누군가 병에 걸린 것 같다”는 제보가 들어오면 가족 전체를 집 안에 가두고 굶어 죽기를 기다렸다. 페스트에 따른 인구 손실은 지역에 따라 80~90%에 이르렀지만 밀라노는 15%의 시민만 사망한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2020년의 한국은 14세기 이탈리아가 아니다. 전염병 차단을 막겠다는 명분으로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권력이 어디까지 확대될 수 있는지 따져봐야 한다.
정부는 민간이 생산하는 재화인 마스크를 조달청을 통해 납품하도록 하고 기업에 조달청과의 계약을 압박하고 있다. 긴급성을 감안할 때 이해되는 점도 있지만, 민간의 생산 역량 확대를 유도하는 일본과 대비된다. 이재명 경기지사는 “종교 집회를 금지하는 긴급명령을 검토하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헌법학자들은 “전쟁 등으로 국회 소집이 불가능할 때 대통령도 제한적으로 행사할 수 있는 것이 긴급명령권”이라며 “대의제 민주주의를 그만두겠다는 발상”이라고 비판했다.
코로나19 확산 앞에 모든 지혜를 짜내 대응해야 한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정부 권한 확대를 어디까지 용인할지는 다른 문제다. 풀려난 공권력은 감염병 차단 후 우리가 돌아가야 할 자유로운 일상의 모습을 영원히 바꿔놓을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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