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구정현대 등 24곳에 재건축 기회 다시 준다

입력 2020-03-08 17:13   수정 2020-03-09 00:38


서울시가 사업이 지연돼 정비구역 해제 대상에 든 재건축·재개발구역의 일몰 기한 연장을 검토하기로 했다. 그동안 정비구역을 대거 해제해 오던 서울시 정책 기조가 바뀌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곽창석 도시와공간 대표는 “최근 서울에서 재건축의 첫단추인 안전진단을 통과하는 단지도 줄을 잇고 있다”며 “‘신규 공급 부족으로 집값 상승세가 장기화될 수 있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을 서울시가 뒤늦게 일부 수용하는 모양새”라고 말했다.

“일몰 연장 검토”

8일 서울시는 일몰 기한을 넘긴 시내 24개 정비구역에 대해 기한 연장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발표했다. 일몰제란 사업 진척이 더딘 곳을 정비구역에서 해제하는 절차다. 조합설립과 사업시행계획인가 등 단계마다 기한을 두고 있다. 2012년 1월 31일 이전 정비계획이 수립된 구역에서 승인된 추진위원회의 경우 지난 2일자로 조합설립 ‘데드 라인’이 지났다.

본지 3월 2일자 A26면 참조

추진위들은 그동안 구역해제를 피하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였다. 잠실 장미1·2·3차 등 15곳은 기한이 지나기 전에 조합설립 신청을 마쳐 일몰제를 피했다. 성수전략정비구역 2지구는 인근 지구 주민들까지 나서 조합설립을 도왔다. 신반포26차는 일몰제를 적용받지 않는 소규모 재건축으로 아예 사업 방식을 바꿨다. 하지만 압구정 특별건축계획3~5구역과 신반포2차 등 24곳은 끝내 조합설립 동의율(75%)을 채우지 못해 일몰 대상에 들었다. 결국 모두 일몰 기한 연장을 신청하고 서울시의 최종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이번 서울시의 발표는 조합설립 기한이 지난 곳들을 적극적으로 구제하겠다는 게 핵심이다. 류훈 서울시 주택건축본부장은 “주민 다수가 사업 지속을 원하는 곳은 계속 진행할 수 있도록 사후 지원까지 할 것”이라며 “도시계획위원회 자문을 거쳐 구역별 연장 여부를 최종적으로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 같은 발표가 생색내기란 지적도 나온다. 서울시 방침과 관계없이 관련 법에 이미 일몰 연장 규정이 담겨 있어서다.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도정법)’은 주민 30%의 동의로 일몰 연장을 신청할 경우 심의를 통해 최대 2년까지 기한을 늘릴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기한을 넘긴 24곳의 정비구역은 모두 연장을 신청했다.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

구제 범위에 따라선 형평성 논란이 불거질 가능성도 있다. 2011년 박원순 시장 취임 이후 주택가격 상승과 주민갈등 등을 이유로 정비구역을 대거 해제해 왔던 기조와 어긋나기 때문이다. 그동안 서울시는 ‘뉴타운 출구전략’ 등을 추진하면서 전체 정비구역 683곳 가운데 절반이 넘는 394곳을 해제했다.

지난해엔 신반포궁전아파트가 일몰제를 적용받아 정비구역에서 해제됐다. 옛 증산4구역은 서울시가 일몰 연장을 거부하자 대법원 소송까지 갔지만 해제를 피하지 못했다. 이 구역의 주민 이모 씨는 “연장 신청 당시 조합설립 동의율이 60%를 넘긴 상태였지만 시에서 받아들이지 않았다”며 “이제 와 주민 의견을 듣겠다며 다른 잣대를 들이대는 꼴”이라고 지적했다.

서울시가 주택 공급부족 논란을 잠재우기 위해 일몰 연장 카드를 꺼내 흔들고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서울시가 올해 초 기자간담회에서 공개한 공급물량 전망은 민간업체의 집계와 큰 차이를 보였다. 서울시는 내년에 새 아파트 3만8000가구가 공급된다고 발표했지만 부동산114가 입주자모집공고를 토대로 계산한 입주물량은 2만2000가구에 불과했다. 서울시 집계엔 역세권청년주택과 지역조합주택 등도 포함돼서다. 시장이 필요로 하는 주택 유형과 거리가 멀거나 입주 시점을 가늠하기 어려운 유형들이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수급불균형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정비구역 해제 기조를 유지하긴 부담스러울 것”이라며 “공급이 충분하다는 기존 발표를 뒷받침하기 위해서라도 구역 존치의 필요성을 느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몰 연장 여부는 도시계획위원회와 도시재정비위원회에서 최종 결정된다. 서울시의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조례’는 주민갈등 여부나 사업성, 사업 정체 기간 등을 따져 해제와 연장을 결정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추진위 운영이 멈춘 경우도 해제 사유에 든다. 이번에 연장을 신청한 구역들 가운데서도 여러 곳이 추진 주체가 불분명해 앞날을 장담할 수 없다. 미아11구역과 여의도 목화, 미성아파트 등이다. 영등포구청 관계자는 “여의도의 일부 노후 아파트는 추진위를 운영하지 않고 있어 주민들 의견을 물어 구청장 직권으로 일몰 연장 신청을 했다”고 말했다.

전형진 기자 withmold@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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