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달항아리의 비밀

입력 2020-03-08 18:13   수정 2020-03-09 00:08

백자대호(白磁大壺)는 조선시대 후기에 만들어진 자기 항아리다. 흔히 ‘달항아리’란 별칭으로 더 친숙한데 휘영청 둥그런 보름달을 닮았다고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 지난 6일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 지정이 예고된 부산박물관 소장 백자 항아리는 자연스럽고 당당한 모습에 제작 기법도 우수해 왕실 도자기 가마에서 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달항아리를 ‘잘생긴 며느리’에 비유한 이는 국립중앙박물관장을 지낸 혜곡 최순우 선생(1916~1984)이다. 혜곡은 달항아리를 일러 ‘중국 항아리처럼 거만스럽다거나 일본 항아리처럼 신경질적인 데가 없다’며 이렇게 설명했다. “잘생겼다는 말은 원만하고 너그러우며 믿음직스럽다는 뜻도 포함돼 있으므로 우리 백자 항아리는 이런 아름다움의 요소들에 귀여운 며느리가 지니는 미덕이 함께 있는 셈이 된다.”

백자대호는 혜곡의 말 한마디에 잘생긴 며느리의 풍모를 지닌 달항아리로 널리 불리게 됐다. 그저 둥글다고 표현해서는 맛이 나지 않는 풍만한 구(球) 모양, 하얗다고만 묘사해서는 성이 차지 않는 흰색 바탕이 어우러진 자태가 물질이기보다는 성품에 가깝다고나 할까. 순하고 어진 흰 빛깔이 퍼져가는 걸 들여다보고 있으면 젖빛이 떠오른다. 완벽하게 동그랗지 않은 모양새 또한 흥취를 돋운다. 혜곡은 이를 일러 ‘의젓한 곡선미’라고 했다.

현대 도예가 중에는 이 달항아리의 미학과 미덕에 반해 그 재현과 계승에 애쓰는 이들이 많다. 조선시대 백자대호와 나란히 전시된 현대 달항아리를 보면 확연히 다른 점이 보인다. 옛것은 보얗게 정겨운데 요즘 것은 분칠한 듯 반들거린다. 왜 그럴까.

2007년 국보 제309호로 지정된 달항아리는 순백색이 아니었다. 얼룩덜룩 색면이 항아리 표면을 덮고 있었다. 문화재 보존연구실에서 얼룩 부분의 성분을 조사했더니 오동나무 기름과 가장 비슷한 분석 스펙트럼이 나왔다. 오랜 세월 항아리에 담겨 있던 기름이 안에서 배어나온 것이다.

이렇듯 이런저런 물건들을 몸피 가득 보관하며 두루 쓰이다 보니 달항아리 피부는 사람 손길에 시달리게 되었다. 세월이 흐르며 몸 표면이 긁혀서 저절로 반짝임이 가라앉은 것이다. 장식품이 아니라 실용품이었던 달항아리의 숙명이 명품을 만든 것인데 현대 도예는 그 본질을 잊어버렸다.

박물관 진열장 안에 고즈넉하게 앉아 있는 달항아리가 어느 순간 사연 많은 사람처럼 보일 때가 있다. 생채기 하나 없이 너무 깔끔한 도자기는 이야기가 들리지 않는다. 어려운 시절을 이겨낸 문화유산이 우리에게 건네는 교훈은 말 그대로 국보이자 보물이란 이름에 값한다. 생활의 미감이 물씬한 달항아리야말로 한국미의 정성, 한국의 마음이 될 자격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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