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쯤 되면 중국이 뭔가 책임감 있는 말을 한마디 할 만하다. 그런데 정말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고 있다. “중국의 강력한 방역시스템이 세계의 공공안전에 큰 공헌을 했다.” 베이징의 지도자가 한 말이다. 여기까지는 그런대로 받아줄 만하다. 그런데 중난산이란 중국의 ‘사스 영웅’이 폭탄선언을 했다. “우한에서 ‘발병’했지만 ‘발원지’는 중국이 아닐 수도 있다.” 그간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정말 기발한 발상이다. 지금까지 주눅 들었던 중국은 돌파구를 찾은 듯 발 빠르게 움직였다.
지난달 29일 관영 환구시보가 “발원지가 불확실하다. 아마 미국일지도 모른다”고 교묘하게 연기를 피웠다. 기다렸다는 듯이 이달 초 베이징대 군사의학연구소를 시찰한 시진핑 주석은 “인공지능과 빅데이터를 활용해 발원지를 반드시 밝혀내라”고 지시했다. 이어 중국 외교부가 “중국 기원설은 누명이다. 중국 정부는 전혀 사과할 이유가 없다”고 전 세계에 공식 선언했다. 중국의 관변 전문가, 관영 언론, 지도자 그리고 외교부가 미리 손발을 맞춘 듯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고 있다.
중국이 진정한 패권국가가 되고자 한다면 다른 나라로부터 존경받는 행동을 해야 한다. 이렇게 온 세상을 난리 나게 했으면 지금쯤 “미안하다” 한마디는 할 만하다. 정보소통을 통제하다가 초기 진압 기회를 놓쳤고, 베일에 싸인 우한바이러스 연구소의 관리도 분명 소홀히 했다. 또 구차한 책임 회피보다는 대국답게 통 크게 나왔어야 한다. 세계보건기구(WHO) 그리고 백신 개발 노력을 하는 20여 개국과 국제공동연구팀을 만들고 남들이 놀랄 만한 거액의 연구비를 기부하는 것이 맞다. 그런데 겨우 짜낸 아이디어가 발병국과 발원국 이원론(二元論)이며, 자국 대학에 발원국을 찾아내라고 국가 1인자가 직접 지시한 것이다. 중국 같은 통제사회에서 베이징대가 얼마나 용기 있는 연구결과를 발표할 수 있을까?
“중국은 지금 전 세계적인 코로나 대응책 마련을 방해하고 있다.” 존 볼턴 전 백악관 안보보좌관의 볼멘소리다. 중국의 적반하장격 태도는 미·중 관계의 또 다른 뇌관을 건드리고 있다. 2년 전 시작된 미·중 무역전쟁이 난항을 거듭하다가 지난 1월 합의를 통해 양국 간 신뢰가 회복되는 듯했다. 그런데 중국이 돌연 ‘외국 발원 가능성’을 들고나오면서 코로나의 블랙박스를 한 번 열어보자고 한 것이다.
1차 세계대전 때 독일이 독가스를 쓴 이후 생화학, 세균 같은 이슈는 모든 나라가 열기를 꺼리는 ‘판도라의 상자’다. 험악했던 냉전 시대에도 미국과 옛 소련은 이 판도라 상자만큼은 건드리지 않았다. 만약 베이징대 연구결과가 발원의 책임을 미국이나 다른 제3국으로 떠넘긴다면 이건 정말 루비콘강을 건너는 것이다.
이미 지난달 뮌헨안보회의에서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제국을 꿈꾸는 중국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미국의 최대 도전국은 중국이다. 미국은 공격적인 ‘중국 공산당’에 직면해 있다.” 워싱턴이 단순히 ‘중국’이 아니라 ‘중국 공산당’을 새삼스레 찍어서 말한 것을 특히 주목해야 한다.
지금 워싱턴은 미국의 순진한 ‘차이나 드림’이 시 주석의 ‘중국몽(中國夢)’에 완전히 당했다는 분위기다. 2000년대 초 중국을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시키면 자유무역을 통해 자연스레 탈(脫)공산화할 줄 알았는데, 반대로 ‘마오주의’로 회귀하고 중국몽으로 미국에 도전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 하원의장을 지낸 뉴트 깅리치는 최근 저서 《트럼프와 차이나의 대결》에서 지금의 두 나라 갈등은 미국식 자유민주주의와 중국식 공산주의 사이의 한 치도 양보할 수 없는 이념·체제경쟁이라고 못 박았다. 베이징이 현 난국을 인류 건강의 문제로 보고 더욱 책임감 있고 용기 있게 행동해야만 세계 경제와 국제질서의 정상화를 앞당길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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