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정기주총서 주주권 행사 '방아쇠' 당긴 국민연금…SKC코오롱PI·S&T중공업 안건에 반대표

입력 2020-03-09 17:34   수정 2020-03-10 00:53

국민연금이 올해 상장사들의 정기 주주총회에서 주주권 행사의 방아쇠를 당겼다. SKC코오롱PI의 정기 주총에서 무더기 반대표를 행사하면서다. 이사회의 독립성 및 주주 권익 관련 안건에 대해 과거보다 깐깐한 잣대를 들이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9일 증권업계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지난달 28일 열린 SKC코오롱PI의 정기 주총에서 ‘주총 및 이사회의 효율적 운영을 위한 세부사항 일부 조정’ 안건에 반대표를 던졌다. 사외이사 임기 변경, 이사회 소집 통지기간 단축, 정관상 이사회 결의 대상 축소가 이사회의 견제 기능을 약화시킬 것이라는 우려에서다.

SKC코오롱PI는 기존 정관에서 이사회 의장은 대표이사가 맡고 대표이사 유고 때는 부사장, 전무, 상무 순으로 직무를 대행한다고 규정했다. 하지만 이번 주총에서 “이사회 의장은 이사회에서 정한다”고 단순화한 정관 변경 안건을 올렸다. 또 이사에 결원이 생겼을 때 업무 수행상 지장이 없으면 굳이 주총을 통해 추가 선임하지 않아도 된다는 내용도 정관에 추가했다.

국민연금은 SKC코오롱PI가 이사 책임 감경 근거를 신설하는 안건에도 반대했다. 국민연금 관계자는 “이사 책임 감경 조항을 도입하면 주주 권익이 침해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SKC코오롱PI 외에도 러셀, 우양, 포비스티앤씨 등이 올해 정기 주총에서 이사 책임을 줄이려 하고 있어 국민연금이 어떤 의결권을 행사할지 주목되고 있다.

국민연금은 지난달 28일 정기 주총을 연 S&T그룹 계열사 S&T중공업의 이사 보수 한도액 승인 안건에도 반대표를 던졌다. 보수 한도가 보수에 비해 과다한 데다, 보수 자체도 경영 성과에 비해 너무 많다고 판단해서다. S&T중공업은 올해 이사의 보수 한도를 4명, 15억원으로 잡았다. 한 명당 평균 3억7500만원 수준이다.

국민연금의 반대표 행사에도 불구하고 SKC코오롱PI와 S&T중공업이 상정한 안건은 모두 원안대로 통과됐다. 최대주주를 비롯해 특수관계인 지분율이 높은 덕분이다. 하지만 기업들은 이번 SKC코오롱PI 등에 대한 반대 의결권 행사가 이달 본격화되는 상장사 정기 주총에서 국민연금이 보일 행보를 가늠해 볼 수 있는 첫 사례라는 점에서 주목하고 있다.

국민연금이 지분을 5% 이상 갖고 있는 상장사는 작년 말 기준으로 총 313곳에 달한다. 국민연금은 이 중 56곳에 대해 지난달 주식 보유 목적을 기존 ‘단순투자’에서 ‘일반투자’로 변경하기도 했다. 경영권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겠지만 배당 확대, 지배구조 개선 등 주주가치를 높이기 위한 활동을 강화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것이다.

국민연금은 남매간 경영권 분쟁을 벌이고 있는 한진칼에는 직접 의결권 행사를 하기로 결정했다. 당초 위탁운용사 10여 곳을 통해 약 2.9%를 보유하고 있어 의결권도 위임했지만 한진칼 보유 목적이 경영참여로 공시돼 있는 점을 감안해 의결권을 회수하기로 했다. 이로써 국민연금은 한진그룹 경영권 분쟁에서 캐스팅보트를 쥐게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상장사 관계자는 “국민연금의 의결권 향방은 그 자체로 자산운용사나 각종 공제회의 의결권 행사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며 “비슷한 안건을 상정한 기업들은 불안해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은정 기자 ke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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