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의 맥] 기초튼튼 과학기술, 수학서 시작한다

입력 2020-03-11 18:44   수정 2020-03-12 00:14

오는 7월부터 고속도로 등 일부 차로에서 자율주행차에 운전을 맡길 수 있게 된다. 부분 자율주행차(레벨3) 출시가 허용되기 때문이다. 불가능할 것 같던 인간의 상상력이 현실이 되고 있다. 이런 4차 산업혁명 시대의 핵심 기술인 인공지능(AI)의 기반이 되는 학문은 수학이다.

400여 년 전 갈릴레이는 “자연이라는 커다란 책은 그 책에 있는 언어를 아는 사람만 읽을 수 있다. 그 언어는 수학이다”라고 말했다. 수학은 복잡한 자연 현상을 수와 식으로 모델링하는 과학의 언어다. 물리, 화학 등 모든 자연과학과 이로부터 파생된 공학은 수학에 의존한다.

수학은 인류에게 가중되는 ‘지식의 부담(knowledge burden)’에도 해답을 준다. 기술 발전은 더 많은 지식을 축적시키고, 세대가 지날수록 더 많은 학습량을 요구한다. 이 방대한 데이터를 체계적으로 수집하고 분석하는 역량이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다. ‘AI의 재료’ 빅데이터의 분석은 수학 원리를 안다면 효율적으로 처리할 수 있다. 자율주행차도 운행조건과 환경 등에 대한 빅데이터와 AI가 만나면서 가능해졌다.

굳이 AI까지 가지 않아도 된다. 수학은 생활 속 어디에나 있다. 마트에 둥근 수박 A(지름 15㎝)와 B(30㎝)가 있다고 하자. 가격은 각각 2000원, 1만원이다. 주머니엔 1만원이 있다. 여러 사람이 먹으려면 어떤 수박을 사는 게 나을까. 얼핏 보면 A 다섯 통이 많아 보인다. 사실은 B 한 통이 더 낫다. 구의 부피는 반지름의 세제곱에 비례하기 때문(B 한 통=A 여덟 통)이다. 원에 숨어있는 특별한 수, 원주율 파이(π)에서 나온 원리다.

수천 년 전 처음 발견된 파이는 당대 수학자들의 대단한 상상력과 도전의 결과였다. 이집트 등 고대 문명에서 강 범람을 예측하기 위해 고안된 적분도 ‘극한’이란 상상력에서 시작됐다. 물리학의 기본이자, AI 알고리즘의 토대인 미분은 적분에서 유래했다. 이같이 상상력과 결합한 수학적 사고력이 4차 산업혁명 시대의 가장 큰 경쟁력이다.

한국 학생들의 수학 실력은 갈수록 저하되고 있다. 지난해 국가학업성취도 평가결과 수학 실력이 ‘보통’ 수준이 안 되는 고교 2학년생 비율이 34.5%로 4년 전(19.7%)에 비해 크게 증가했다. 2018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에선 한국 고교 1학년생 수학 성취도가 5~9위로 나타났다. 2006년(1~4위), 2012년(3~5위) 성적을 감안하면 해마다 곤두박질치고 있다. AI 설계, 공학 수업 등의 기본인 선형대수(행렬·벡터)가 새 교육과정에서 배제된 것도 뼈아픈 대목이다. 구글 검색엔진의 시초는 선형대수에서 비롯됐다.

현재 수학 교육방식은 단순 문제풀이에 그쳐 한계가 있다. 수학은 하나의 정답을 찾는 것보다 자신이 찾은 답의 합리적 근거를 확인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한 문제를 장시간 고민해 풀 수 있도록 문제해결 과정을 중시하고, 학생들이 다양한 방법으로 스스로 답을 찾도록 장려하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나라가 기초가 튼튼한 과학기술 강국으로 도약하기 위해선 무엇이 필요할까.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올해부터 ‘STEM(과학·기술·공학·수학) 생각교실’을 마련했다. 중·고교생 5000여 명을 대상으로 시범 운영한다. 국가수리과학연구소 등 과기정통부 출연연구소, 학교 간 연계를 강화해 수학 수업의 내실화도 지원할 생각이다.

수학을 문화로 접할 수 있는 기회도 확대한다. 3월 14일은 원주율 값(3.141592…)을 감안해 ‘파이(π) 데이’로 정했다. 특히 올해엔 수학의 중요성을 감안해 물리·화학·의학·재료·화공·기계·전기전자·통신 등 24개 기초연구 지원 분야에서 가장 먼저 수학에 467억원을 사전 할당했다. 시대를 이끌 인재에게 필요한 핵심 역량이 무엇인지에 대해 진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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