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비누의 재발견

입력 2020-03-11 18:40   수정 2020-03-12 00:21

‘그에게서는 언제나 비누 냄새가 난다.’ 1960년 나온 강신재 소설 《젊은 느티나무》의 첫 문장이다. 부모의 재혼으로 오누이가 된 22세 청년과 18세 여고생의 풋풋한 얘기가 싱그러운 비누 내음과 함께 전해져 온다. 우리나라 최초의 미용비누인 ‘미향’이 등장한 게 1956년이니, 1960년대 초만 해도 비누는 귀하고 값도 비쌌다. 그래서 ‘고급 향기’ ‘멋쟁이 냄새’로 불렸다.

서양에서는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수메르인이 산양기름과 나무의 재를 끓여서 비누를 처음 만들었다고 한다. 비누의 주요 성분인 알칼리(alkali)는 식물의 재(kali)를 뜻하는 말에서 유래했다. 의학자들과 역사학자들은 인류의 생명을 가장 많이 구한 물품으로 비누를 꼽는다. 1790년 프랑스 화학자 니콜라 르블랑이 비누를 대중화한 뒤 유럽인의 수명이 반세기 만에 20년이나 늘었다는 분석도 있다.

비누의 세정 원리는 간단하다. 비누 분자의 한쪽은 물에 잘 녹고, 다른 한쪽은 기름에 잘 녹는다. 물과 기름을 섞이게 해주는 두 가지 다른 성질의 물질인 계면활성제 덕분이다. 바이러스는 비누의 지방층에 달라붙은 다음 비누 거품이 제거될 때 물에 씻겨 내려간다.

코로나19 같은 변종 바이러스를 막는 데도 알코올이 섞인 세정제보다 비눗물로 손을 자주 씻는 게 더 효과적이라는 연구 결과가 잇따라 나오고 있다. 비누의 암피닐이라는 지방질 성분이 바이러스 제거를 돕는다는 것이다. 카렌 플레밍 존스홉킨스대 교수는 “코로나바이러스는 지방질 막으로 둘러싸여 있는데 비누와 물이 이 지방을 녹이면서 바이러스를 죽인다”고 설명한다.

팰리 소더슨 호주 뉴사우스웨일스대 교수는 “알코올의 일종인 에탄올이 들어간 손 세정제는 죽은 바이러스를 완전히 흘려보내는 비누에 비해 손에 남은 에탄올을 다 없애지 못하는 단점이 있다”며 “손에 묻은 유해 화학물질까지 제거할 수 있는 것은 비누”라고 말했다.

우리나라 질병관리본부뿐만 아니라 세계보건기구(WHO)와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도 “코로나19에 감염되지 않으려면 비누로 손을 씻는 게 가장 좋다”고 강조하고 있다. 감염병 비상시국이 아니어도 비누는 청결의 상징이다. 깨끗한 손끝에서 봄바람에 살랑이는 ‘젊은 느티나무’의 향기까지 은은히 풍긴다면 더욱 싱그럽지 않겠는가.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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