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증시가 이번에는 '피의 목요일'을 맞았다. 세계보건기구(WHO)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세계적 대유행(팬데믹)에 접어들었다고 선언했지만 상황을 타개할 대책이 없다는 투자자들의 판단에 미국과 유럽 증시에서 일제히 투매가 나타났다.
12일(현지시간) 뉴욕증시의 다우존스30 산업평균지수는 전 거래일보다 2,352.60포인트(9.99%) 폭락한 21,200.62로 장을 마감했다. 이달 9일 2,013.76포인트(7.79%) 무너진 지 사흘 만에 2,000포인트 넘게 떨어진 폭락 장세가 나타났다. 다우지수 120년 역사에서 가장 충격적인 사건인 1987년 '블랙 먼데이'(-22.6%) 이후로 최대 낙폭을 기록했다고 CNBC방송은 전했다.
뉴욕증시 전반을 반영하는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지수와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지수도 9% 넘게 추락했다. S&P500지수는 260.74포인트(9.51%) 내린 2,480.64로 장을 마쳤다. 나스닥지수는 750.25포인트(9.43%) 떨어진 7,201.80을 기록했다.
뉴욕증시는 이날 개장과 동시에 폭락해 주식거래가 일시 중지되는 '서킷브레이커'가 발동됐다. 서킷브레이커는 주가 급등락의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15분간 매매를 중단하는 제도로, S&P 500지수 기준으로 7% 이상 출렁이면 발효된다. S&P500 지수가 개장한 뒤 5분 만에 7%대로 낙폭을 키워 192.33포인트(7.02%) 하락한 2,549.05에서 거래가 중단됐다. 서킷브레이커가 발동된 것은 지난 9일에 이어 사흘 만이다. 서킷브레이커 발동 후 거래는 9시50분 재개됐지만, 뉴욕 증시는 낙폭을 추가 확대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전날 백악관 집무실에서 TV 대국민 연설을 통해 코로나19 사태에 대한 적극적인 대응을 예고했지만, 투자심리 경색을 진정시키기에는 미흡하다는 평가로 주가가 폭락했다고 현지 언론들은 진단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지난 11일 코로나19를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으로 선언했다. WHO가 팬데믹을 선언한 건 2009년 신종 인플루엔자(H1N1) 대유행 이후 11년 만이다.
이와 함께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전날 유럽을 대상으로 입국금지 조치를 내리면서 관련 우려가 확산됐다. 항공주, 에너지주 등 관련 업종을 중심으로 미 증시에서 주가가 급락하는 모습이 나타났다. 트럼프 대통령은 코로나19 확산이 심한 유럽의 경우 13일부터 30일간 미국으로의 여행을 중지한다고 밝혔다. 사실상 입국 금지에 해당하는 조치로, 영국과 아일랜드를 제외한 26개국에 적용된다.
미국 뿐 아니라 유럽증시도 코로나19 확산 여파로 일제히 10% 이상 폭락했다.
영국 런던 증시의 FTSE 100 지수는 전 거래일 대비 639.04포인트(10.87%) 급락한 5.237.48로 거래를 마쳤다. 이는 1987년 주식 시장 붕괴 이래 하루 최악의 낙폭이다.
독일 프랑크푸르트 증시의 DAX 지수도 1,277.55포인트(12.24%) 추락한 9,161.13을 기록했다. 프랑스 파리 증시의 CAC 40 지수는 565.99포인트(12.28%) 떨어진 4,044.26으로 장을 마감했다.
범유럽지수인 유로 Stoxx 50 지수는 360.33포인트(12.40%) 급락한 2,545.23로 거래를 마쳤다. Stoxx 50 지수도 하루 최대 낙폭이자 유일한 두자리수폭 하락 기록이다. 2008년 세계 금융 위기 당시의 하락을 넘어선 것이다.
유럽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가장 많은 이탈리아의 FTSE MIB 지수는 14,949.50포인트(16.92%) 추락한 14,949.50으로 거래를 마무리지었다. dpa 통신은 1998년 해당 지수가 시작한 이래 최대폭이라고 전했다.
유럽중앙은행(ECB)이 자산(채권) 매입을 확대하고 장기대출프로그램(LTRO)을 일시적으로 도입하는 부양책을 내놨지만, 투자자들의 기대에 못 미쳤다는 평가다.
ECB는 연말까지 한시적으로 채권 매입 규모를 1200억유로 더 늘리기로 했다. 기존 월 200억유로 수준의 채권 매입은 그대로 유지한다. ECB는 또 저금리로 유럽은행들에 대출해주는 LTRO를 도입하기로 했다. ECB는 “금융시장과 은행 시스템에서 유동성 부족 신호는 보이지 않고 있지만 이런 정책은 필요 시 효과적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기준금리는 현행 0%로 유지했다. '마이너스 기준금리' 시대를 기대했던 시장에서는 실망 매물이 출회됐다.
한편, 코로나19 사태로 뉴욕증시 폭락세가 이어지면서 미국 중앙은행(Fed)은 연일 시장에 유동성을 쏟아붓고 있다. 12일과 13일 이틀에 걸쳐 총 1조5000억달러의 단기유동성을 대거 투입했다.
Fed의 '공개시장조작' 정책을 담당하는 뉴욕연방은행은 12일(현지시간) 홈페이지에 올린 성명을 통해 이틀간 3개월짜리 레포(환매조건부채권) 거래를 각각 5000억달러 한도로 운영한다고 밝혔다. 1개월짜리 레포도 13일 당일 5000억달러 규모로 운영하기로 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12일과 13일 이틀에 걸쳐 총 1조5000억달러의 단기유동성이 시장에 추가로 공급되게 됐다.
뉴욕연방은행은 다음달까지 수차례에 걸쳐 3개월물과 1개월물 레포 거래를 이어간다는 방침이다. 앞서 뉴욕연방은행은 전날 하루짜리(오버나이트) 레포 한도를 1750억달러로, 2주짜리 레포 한도를 450억달러로 각각 상향 조정한 바 있다.
레포 거래와는 별도로, 국채 매입도 다양화하기로 했다. 그동안 매달 600억달러 한도에서 단기물 국채를 순매입하던 상황에서 매입 대상을 물가연동채권(TIPS) 등으로 넓힌다는 방침이다.
뉴욕연방은행은 "코로나19와 맞물린 국채시장의 매우 이례적인 혼란에 대응하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이는 장기물 자산을 매입하는 방식으로 유동성을 공급하는 '양적완화'(QE) 정책으로 다가서고 있다고도 금융업계에서 해석 가능한 부분이다. 다만 Fed는 이에 대해 자금시장의 기술적인 개입으로 기존의 대규모 양적완화와는 다르다고 선을 긋고 있다.
한경닷컴 뉴스룸 op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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