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염병을 찾아내고 원인을 규명하고 치료제를 개발하는 것은 과학이다. 환자에게 적합한 약을 처방해 사망에 이르지 않도록 하는 것도 과학의 영역이다. 하지만 전염병이 다른 사람들에게, 특히 국민 전체에 퍼지지 않도록 하는 것은 정치다. 필연적으로 개개인의 활동을 제약하는 것이니 그럴 수밖에 없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도 마찬가지다.
코로나19 과학에선 모델이 하나밖에 없다. 신종플루 치료제인 타미플루처럼 코로나19 치료제를 개발하는 게 최종 목표다. 의사들과 과학자들의 몫이다.
코로나19 정치에선 수많은 모델이 난립한다. 체제마다 다르고 나라마다 제각각이다. 하지만 과감히 축약하면 전세계에서 2가지 모델이 있다고 할 수 있다. 하나는 중국식 모델이고 다른 하나는 한국식 모델이다. 중국에서 발병하고 한국에서 두 번째로 빨리 퍼졌기 때문이다.(물론 실제 한국이 중국 다음으로 빨리 창궐했는지는 현재로선 알 수 없고 공식 통계 기준으로만 그렇다)
1. 강제 봉쇄·폐쇄 중국식 모델 효율적이지만…
코로나19 정치 모델에선 ① 개인 활동 제한의 폭과 강제성 ② 검사의 폭과 속도 ③ 정보의 투명성과 신뢰성을 구분의 기준으로 삼는다. 중국은 ① 개인 활동을 대규모로 제한했고 강압적이었다 ② 창궐 이후 검사 범위는 넓었고 빨랐다 ③ 정보는 투명하지 않고 통계 신뢰성에 의문이 든다는 특징이 있다.
시간을 되짚어 보자. 중국에서 코로나19 상황이 심각하다고 외부에 알려진 것은 2020년1월20일이다. 이날 시진핑 국가주석이 전염병 확산을 막으라고 지시했다. 1월23일 후베이성 우한이 봉쇄됐다. 중국의 봉쇄령은 차원이 다르다. 항공 철도는 물론이고 도로도 끊었다. 외부로 통하는 시골의 1차선 도로에도 흙더미를 쌓아 차가 다닐 수 없게 했다. 우한 바깥 주민들은 우한 사람들이 나오지 못하게 총을 들고 지켰다.
25일엔 황강 등 우한 인접 도시들도 봉쇄했다. 이 때는 사실상 후베이성 전체를 봉쇄한 것으로 보면 된다. 2월4일 무렵부턴 사실상 중국 주요 도시가 외부와 차단됐다. 또 내부엔 이름도 생소한 ‘폐쇄식 관리’가 시행됐다. ‘폐쇄식 관리’란 한마디로 주민들을 집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2~3일에 한 번씩 공안(경찰)의 허가를 받아 식료품이나 약품을 사러 가정당 한 명만 집에서 나올 수 있었다.
이 조치로 14억 인구 중 7억6000만명이 집에서 격리됐다. 농촌을 제외하면 도시 인구 전체다. 농촌에선 이동이 많지 않다는 것을 감안하면 사실상 ‘전 인구의 격리’가 강제로 시행됐다.
중국은 입국하는 외국인에 대해서도 반강제적 조치를 취하고 있다. 14일간 격리다. 수도 베이징이 전세계에서 들어오는 사람들한테 이 조치를 취했다.
중국 당국은 초기 방역 실패 후 대대적인 검사에 나섰다. 우한과 후베이성 전체 시민들에 대한 검사를 실시했다. 다른 지역에서도 증상이 나타나면 적극 검사하고 투약에 나섰다.
3월13일 기준 중국의 코로나19 누적 확진자 수는 8만여명이다. 2월20일 이후 환자는 크게 늘지 않고 있다. 당연한 결과다. 사람간 교류가 끊기면 전염병도 수그러들 수밖에 없다. 전염이 안되니.
문제는 정보의 투명성과 신뢰성이다. 중국 공식 통계로는 우한과 후베이성의 확진자 수가 현재 각각 5만명, 6만7800여명이다. 사망자는 우한이 2400여명, 후베이성이 3000여명 정도다. 그러나 중국 이외 국가에선 이 수치를 별로 신뢰하지 않는다. 특히 우한에서의 사망자는 이보다 몇 배 많을 것으로 보고 있다. 검사조차 받지 못하고 사망한 사람들이 워낙 많다. 집이나 길거리에서 숨진 우한 시민들 중 대다수는 안타깝게도 화장장으로 바로 보내졌다.
2. 자발적 거리두기· 대규모 신속 검사 한국식 모델도 효과
한국식 모델은 ① 정부가 개인 활동을 강제로 제한하지 않고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거리두기를 했다 ② 대규모로 신속하게 검사하고 있다 ③ 정보는 투명하고 신뢰도도 높다
한국에서 코로나19 확산의 기점은 2월18일로 봐야 할 듯 하다. 신천지 교인인 31번 환자가 나온 것도 이날이고, 확진자가 31명에서 51명으로 갑가지 늘어난 것도 이날이다. 이후 대구와 경북에서 확진자가 가파르게 증가했다.
하지만 한국 정부는 대구를 봉쇄할 수 없었고 봉쇄하지 않았다. 국민 중 일부는 대구 봉쇄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지만 대다수는 그 단계에서 무의미하고 차별적이라고 봤다. 대구 봉쇄 발언을 한 홍익표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사퇴할 수밖에 없었다.
대신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조심하기 시작했다. 대구 방문을 자제하고 대구 시민들도 외지로 나오지 않았다. 부친이 대구에서 코로나19로 작고한 안타까운 일을 당한 한 직장인은 빈소를 찾아오지 말라고 호소했고 모두들 마음으로 위로하는 것으로 대체했다. 서울에서 열린 동료 결혼식에도 상당수가 축의금만 보내고 축하했다. 모두들 이해했다. 성숙한 시민의식이다.
한국은 외국인에 대한 격리도 하지 않고 있다. 대신 밀착 감시 방식을 택했다. 공항에서 발열 검사를 해서 통과하면 한국 내에서 관리 가능하다고 보고 내린 조치다.
한국의 의료진은 2월18일부터 대규모로 검사에 나섰다. 확진자와 접촉한 사람들을 찾아내 격리하고 증상이 생기면 바로 진단에 나섰다. 3월13일 기준 검사 건수는 22만건을 웃돈다. 드라이브스루 라는 혁신적인 검사 방법도 선보였다.
중앙정부가 우왕좌왕하는 것과 달리 지방자치단체는 체계적으로 적극 나섰다. 확진자의 동선을 알리며 시민들에게 주의를 당부하고 있다. 물론 사생활 침해 논란은 있지만 현재 그보다는 필요성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 보인다. 대규모의 신속한 검사는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때의 반성에서 나온 것이지만 어찌됐건 지금은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다. 한국 의료진은 이를 바탕으로 치명률(확진자 대비 사망자 비율, 치사율과 동의어)을 1% 아래로 유지하며 환자들을 사망에서 구해내고 있다. 안심할 단계는 아니지만 확진자 수도 조금씩 줄고 있다.
정보의 투명성과 신뢰성은 한국이 세계 최고 수준이다. 미국 유럽 홍콩 등 대다수 국가가 통계적 유의미성은 한국에서 찾는다. 중국 통계를 신뢰하지 않는 것과는 반대다.
3. 어떤 나라가 중국식 모델 택하고 있나
① 제한의 강제성 ② 검사 방식 두가지를 가지고 외국의 현황을 살펴볼 수 있겠다.
이란은 중국식 모델을 택한 대표적 나라다. 사실상 전국에 이동제한령을 내렸다. 주요 도로에 검문소를 설치해 차량 이동을 차단했다. 준군사조직인 바시즈민병대를 동원해 8000만 전인구에 대한 조사에 나섰다. 물론 한국과 같은 체계적 검사는 아니다. 발열 등 증상이 있는지 알아본 뒤 증상이 심각하면 검사를 하고 투약하는 방식이다. 미국의 경제제재 여파로 진단키트와 의약품이 없으니 초기 대처가 늦었다. 뒤늦게 중국, 유럽, 세계보건기구(WHO) 등의 지원으로 사망자 줄이기에 본격 나섰다.
인도도 중국식 모델이라고 보면 될 듯 하다. 두 나라 모두 확진자가 많지 않아 검사 방식은 의미가 없다. 두 나라는 강력한 통제정책으로 외국으로부터의 유입을 막고 있다. 인도는 사실상 모든 외국인의 입국을 차단했다. 베트남도 비슷하다. 한국에서 확진자가 급증하자 한국인 입국을 사실상 금지했다. 북한이나 러시아도 외국인 금지라는 측면에서 중국식의 강력한 통제모델을 도입했다.
이 국가들의 공통점은 뭘까. 러시아 베트남 북한 등은 독재국가다. 현재도 사회주의이거나 사회주의 문화가 남아있는 곳이다. 그것이 다일까. 광범위한 의료체계가 갖춰지지 않은 것도 공통점이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방역 능력이 떨어지는 국가에서 한국인 입국을 제한한다고 한 것은 어느 정도 사실에 부합한다.
4. 미국 유럽은 ‘한국식+중국식’ 하이브리드 모델
미국과 유럽은 기본적으로 한국식 모델에 중국식 통제를 가미한 대책을 쓰고 있다. 이탈리아는 모든 국민에 이동제한령을 내리고 상점의 문을 닫았다. 기본은 권고이고 어기면 제재를 가하지만 그 수위는 중국에 훨씬 못 미친다. 검사는 한국식이다. 대규모로 신속하게 진행하고 있다. 현재 한국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5만건 이상의 검사를 진행했다.
다른 유럽 국가들도 이탈리아와 마찬가지다. 프랑스 독일 스페인 영국 등은 통제 확대에 나섰다. 하지만 중국 식의 강압적 억제는 아니다. 할 수가 없다. 일부 국가가 인접 국가의 국경을 봉쇄하자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하나의 유럽’이란 기치 아래 만들어진 솅겐조약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보건의 측면에서도 봉쇄와 차단으로 확산을 막을 단계는 아니라고 보고 있다. 다만 100명 이상 모이는 행사를 중단하고 휴교령을 내리고 재택근무를 실시하는 등의 ‘시민 격리’에 주력하는 게 낫다고 보고 있다. 이것이 독일과 프랑스의 방식이고 한국식 모델에 근간을 두고 있다.
미국도 ‘한국식+중국식’의 하이브리드 모델이다. 중국과 유럽으로부터 입국 금지한 것의 인상이 강하지만 기본은 시민의 자율에 바탕을 둔 한국식이 바탕이다. 개인의 자유가 더 중요한 나라여서 그렇다.
좀 더 주목해 볼 것은 한국시간 14일 새벽(미국시간 13일 저녁)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발표다.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며 대규모 검사를 진행할 것이라고 했다. 한 달 안에 500만명 검사가 가능할 것이라고 했다. 한국식의 드라이브스루 검사도 시작하겠다고 했다.
미국이 중국인의 입국을 차단했지만 효과는 없었다. 그 전에 이미 퍼지기 시작했거나 유럽으로부터의 유입이 상당히 많았다. 유럽으로부터의 입국을 30일간 금지했지만 오히려 역효과만 불러일으키고 있다. 주가가 이에 대해 말을 하고 있다. 11일 밤 ‘유럽 입국 금지’를 발표하자 다우지수는 12일 9.99% 떨어졌다. 하지만 13일 장중 대규모 검사를 하겠다고 하니 다우지수는 9.36% 상승으로 마감했다.
그럼 왜 한국식 모델이 세계에서 평가받을까? 중국식 강압적 봉쇄·폐쇄 모델은 효율적이다. 하지만 자유국가에선 불가능하다. 사회가 개인의 자유를 중시한 체제를 선택했기 때문이다. 실효성 측면에서도 의문이다. 자유국가가 중국식 통제를 도입해도 구성원들이 이를 잘 따를까? 어차피 누수는 생긴다. 그렇다면 시민의식에 기댈 수밖에 없다.
코로나19의 전개 시점도 중요하다. 지금와서 모든 것을 막는 것은 부작용이 너무 크다. 경제가 마비된다. 사람들이 집에만 있고 움직이지 않는데 소비가 일어날 수가 없다. 유통도 잘 안 된다. 생산은 당연히 줄어든다. 이는 경제위기나 공황으로 연결될 수밖에 없다. 경기 부양책으로 돈을 뿌려도 집에 가만히 있는데 무슨 효과가 있을까?
5.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나라 일본
세계 주요 국가 가운데 가장 이상한 나라가 일본이다. 중국식도 한국식도 채택하지 않고 있다. 외국인의 눈으로는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검사를 제대로 안 한다. 그래서 환자 수도 많지 않고 별로 위험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일본 당국자들은 의료자원을 효율적으로 쓰기 위해서라고 하는데 궤변으로 들린다. 비상시국에 효율이라니. 일본 언론에서도 검사를 못 받아 쓰러지는 사람이 속출하고 있다고 하는데…
처음에는 일본이 도쿄올림픽 때문에 검사를 일부러 안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렇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검사를 많이 하지 말자는 분위기다. 그리고 일본이 대규모 검사 능력을 갖고 있는지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으로 바뀌고 있다. 그래서 가장 위험해 보인다. 일본이 한국인 입국을 차단한 것에 대해 어찌보면 감사해야 할 지경이다.
한국식 모델, 즉 대규모의 검사와 치료를 핵심으로 하는 코로나19 대책은 자유국가에서 기본으로 취해야 하는 것으로 굳어져 가고 있다. 다만 한국의 중앙정부가 이를 치적으로 내세우는 것에 대해선 다른 견해를 갖고 있는 사람도 많다. 한국식 모델이 코로나19의 해법이 되어가고 있는 데는 의료진과 시민들의 공이 크다. 지방정부 일선 공무원들의 노고도 크다. 마스크 대책 하나 제대로 못 만드는 중앙정부와는 다르다. 특히 이 순간 주말에도 국민들의 건강과 목숨을 구하기 위해 지금도 현장에서 사투를 벌이고 있는 의료진에게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
박준동 국제부장 jdpowe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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