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포럼] 허점 보인 위기관리 소통…전문성 앞세워야

입력 2020-03-18 18:02   수정 2020-03-19 00:11

세계보건기구(WHO)는 지난 11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대해 ‘세계적 대유행(팬데믹)’을 공식 선언했다. 이전의 ‘국제적 공중보건 비상사태’ 단계에서는 전염병 차단에 중점을 뒀지만, 이제는 국지적 확산을 인정하고 국가별 치료와 발생 억제 관리에 중점을 두는 쪽으로 전환한 것이다. 그동안 주저했던 ‘국제적인 보건 위기’를 선언한 셈이다. 그사이 코로나19는 100개국이 넘는 나라에 전파됐고, 12만 명에 이르는 사람들의 감염이 확인됐다.

많은 국가와 언론은 WHO의 위기관리 능력에 더해 중국 등 특정 국가의 입장에 편향된 소통 방식을 비난해 왔다. WHO의 약화된 역량과 위상, 정치적 편향성이 의심되는 사무총장의 전문성도 입방아에 올랐다. 미국이 WHO에 대한 내년도 지원 예산을 올해의 50%를 넘는 6500만달러가량 삭감한다고 하고, WHO는 부족 예산의 상당 부분을 중국에 의존하려 한다는 등 보도가 나오던 중에 벌어진 일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빌 게이츠가 세운 빌&멀린다 게이츠 재단이 코로나19에 대응하기 위해 1억달러를 WHO와 미국 질병통제센터, 중국 정부에 배분해 기부하기로 했다는 소식이다. 어찌 됐든 민간 자선재단의 의사결정과 선의에 의존해야 하는 WHO의 위상, 특히 위기관리 능력에 대한 신뢰는 이미 많이 훼손됐다. 향후 비슷한 국제적 공중보건 위기 상황에서 현 체제의 WHO가 신뢰와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을지 우려된다.

조금은 이른 감이 있지만 국내에서도 ‘위기관리와 커뮤니케이션’ 측면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사실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 이후 부족하지만 어느 정도 준비를 해온 덕분에 코로나19 초기엔 질병관리본부 중심의 위기관리가 비교적 신속하게 이뤄졌고 정보도 투명하게 국민에게 전달될 수 있었다. 신속한 검사 능력은 다른 나라에서는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다.

그러나 감염병 전문병상과 의료 인력의 부족 문제는 정치적 우선순위에서 밀린 탓인지 준비가 부족해 위기관리 현장의 어려움이 가중될 수밖에 없었다. ‘마스크 대란’은 더 우려되는 사안이다. 다른 국가에 비해 마스크 생산 능력은 떨어지지 않지만 위기관리의 신속성·개방성·일관성이 뒤얽힌 탓에 문제가 가중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소통에서는 전문성 이외의 측면이 더 중시되는 상황이 전개됐다. 감염병 전문가들의 판단보다 외교적 고려가 우선시됐고, 정치색 짙은 관료들이 의사결정의 전면에 나섰다. 그 결과 위기관리 소통에서 많은 허점이 드러났다. 개방성보다는 일관된 부인과 불가항력적이라는 주장 그리고 희생양을 찾고 비판자를 공격하는 책임 전가만이 난무했다. 특히 국내 감염 확산의 원인이 “중국에서 온 한국인”이라는 담당 장관과 일부 정치인의 주장, 일부 지방자치단체장의 신천지 관련 과잉 대처는 어떻게든 책임을 남에게 미루면서 자신의 정치적 위상을 높이려고 한 행동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

위기 상황에 직면한 기업 경영자나 정치인들에게는 사건의 본질 그 자체보다 여러 소통 기법이 더 중요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공중보건 비상사태나 재난 같은 상황을 마주해서는 전문가 중심 대응체제를 갖추고, 과학적 근거에 따라 신속하고 개방적이며 일관성 있게 대처하는 게 올바른 방법일 것이다.

지난 정부 시절에도 강조했지만, 위기 때 전면에 나서 대처해야 하는 질병관리본부에는 독립적인 의사결정권과 인사권을 줘야 한다. 총리와 각 부 장관은 지금처럼 전면에 나서지 말고 야전 사령관 격인 질병관리본부장에게 힘을 실어주고 지원하는 역할에 그쳐야 한다. 시간을 다투는 상황에서 현장 전문가가 단계별로 일일이 보고하고 지시를 받는 체제로는 안 된다. 과학적 근거에 기초한 신속한 의사결정을 지연시키는 ‘소통의 전략’이 개입돼서는 곤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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