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석의 월스트리트나우] "1인당 1000달러씩"…'헬리콥터 머니'의 재림

입력 2020-03-18 08:33   수정 2020-06-16 00:01


'헬리콥터 머니'가 쏟아졌습니다. 하지만 뉴욕 증시는 반등세는 시원치는 않았습니다.

17일(현지시간) 뉴욕 증시에서 다우지수는 장 초반 2만포인트 밑으로 내려갔습니다. 그러자 오전 10시반께 미 중앙은행(Fed)은 시장이 요구해온 기업어음(CP) 매입 카드를 꺼냈습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한시적으로 운용한 기업어음매입기구를 설치해 최대 1조달러 규모의 CP를 직접 매입하겠다는 겁니다. 이를 통해 코로나 바이러스로 영업이 중단된 기업들의 자금융통을 돕기로 한 것입니다.
매입 대상은 신용등급 A-1 이상의 3개월짜리 CP로,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까지 포함됩니다.


Fed는 또 아침에 실시하던 하루짜리 레포(환매조건부채권) 입찰에서 한도액을 1750억달러에서 5000억달러로 증액했고, 오후에도 또 다른 하루짜리 레포 5000달러 입찰을 신설했습니다. 이번주에만 해당되는 것이지만, 하루 1조달러를 레포에 쏟아붓는 겁니다.

여기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도 초대형 재정부양책을 추진한다고 발표했습니다.

오전에만 해도 그 규모가 8000억달러로 알려졌지만, 시간이 갈수록 불어나 알려진 것만 1조2500억달러 규모에 달합니다. 미국인 1인당 월 1000달러씩 두 달간 지급하는 데 5500억달러, 소기업 지원에 3000억달러, 항공 호텔 등 특정 산업 지원에 1000억달러, 그리고 4월15일 만기인 분기 세금납부를 연기하는 방식으로 3000억달러를 지원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는 크게 가겠다"며 "항공사들이 폐업하거나 사람들이 직업을 잃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스티븐 므누신 재무장관은 "앞으로 2주 이내에 미국인들에게 직접 수표를 보내겠다"고 설명했습니다.

므누신 장관은 오후에 상원에 이런 계획을 브리핑한 뒤 "트럼프 대통령은 경제에 돋 쏟아붓기를 원한다. 재정적자를 걱정할 때가 아니다"라고 강조했습니다.

므누신 장관은 "금융시장을 계속 가동하려 하지만, 어느 시점에 거래 시간을 단축할 수도 있다"며 증시 폭락이 이어질 경우 거래시간을 줄일 수도 있음을 시사했습니다.



행정부와 Fed가 헬리콥터 머니를 퍼부으면서 월가 일부에서는 반등이 시작되는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왔습니다. 골드만삭스는 "하반기에는 증시가 완전히 회복될 것"이라고 예측했습니다.

이날 다우지수는 전날보다 1,048.86포인트(5.20%) 오른 21,237.38에 마감됐습니다.
다만 반등폭은 어제 하락한 2997포인트의 약 3분의 1에 그쳤고, 변동성지수(VIX)도 전날보다 약 10% 하락한 74선에 머물렀습니다. S&P 500 지수는 6.00%, 나스닥은 6.23% 상승했습니다.

월가 관계자는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이 이제 시작된데다 뉴욕이 48시간내 자택 대피 명령을 계획하는 등 경제활동 셧다운이 카운트다운에 들어간 상황"이라며 "미국의 경기 침체는 이미 시작됐을 지도 모른다"면서 증시 반등이 미약했던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빌 드블라지오 뉴욕 시장은 이날 향후 48시간 안에 내려질 수 있는 '자택 대피 명령(shelter in place order)'에 대비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샌프란시코 시 당국도 전날 이런 조치를 내린 바 있습니다.

또 앤드루 쿠오모 뉴욕 주지사는 코로나19 사태가 앞으로 45일 후인 5월 초에 정점에 이를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이 월가 관계자는 특히 "미 경제는 코로나 바이러스 뿐 아니라 저유가와도 싸워야한다"고 설명했습니다.

러시아와 사우디아라비아의 석유전쟁으로 국제 유가가 떨어지는 한 Fed의 CP 매입 등에도 셰일업계의 대규모 구조조정은 필연적이라는 겁니다. 이날 Fed가 긴급히 CP 매입을 선언한 것도 저유가로 촉발된 회사채 시장의 혼란을 막기 위한 것입니다.



이날 사우디가 매일 100만배럴을 추가로 양산하겠다고 발표하면서 서부텍사스원유(WTI)는 전날보다 배럴당 1.75달러(6.1%) 급락한 26.95달러, 브렌트유는 배럴당 1.32달러(4.39%) 하락한 28.73달러에 마감됐습니다.

올들어서만 가격이 50% 넘게 추락해 지난 2016년 수준으로 돌아갔습니다. 이는 수많은 셰일업계의 파산을 불렀던 가격대입니다. '헬리콥터 머니'가 몰려온다는 소식 속에서도 저유가는 투자자들의 발목을 잡았습니다.

일부에서는 이대로라면 배럴당 10달러대까지 추락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옵니다.

사실 가장 큰 충격은 아직 시작되지 않았습니다. 기존 감산협정이 끝나는 4월1일 이후 사우디와 러시아는 원유를 최대한 뽑아낼 겁니다.

사우디는 2월 일 970만배럴인 산유량을 4월에는 1230만배럴로 늘리겠다고 발표한 상황입니다. 러시아도 단기적으로 일 30만배럴, 장기적으로는 50만배럴씩 더 산유량을 늘리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이날 미국 외교협회(CFR)에서 개최한 KKR의 닐 브라운 글로벌 인프라 담당 임원과의 콘퍼런스콜에 참여했습니다.
그는 이번 석유전쟁이 상당기간 지속될 것이며, 석유시장에 장기적으로 부정적 영향을 남길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그의 말을 정리합니다.



-이번 석유전쟁은 상당기간 지속될 수 있다. 미국과 유럽은 사우디에는 일부 영향력을 갖고 있지만 러시아에는 별다른 압력을 가하기 어렵다.
감산 협상에는 반드시 러시아가 포함되어야한다는 점에서 전쟁은 장기화될 수 있다.

-사우디의 경우 미국은 여전히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수단이 있다. 오늘 래리 커들로 백악관 국가경제위원장 등은 자신의 명의로 모하메드 빈 실만 왕세자에게 편지를 보내 시장 안정을 요구했다.
하지만 러시아의 경우 다르다. 미국이 그동안 러시아, 이란, 베네수엘라를 경제 제재한 게 자국 셰일업계의 수출길을 여는 게 목적이었다고 생각한다. 실제 미국은 이들 산유국들의 수출을 막아 셰일업계를 도왔다.
이번 전쟁을 해결하려면 러시아와 이 문제를 풀어야한다. 이를 외교적으로 해결하는 것은 매우 어려우며, 꽤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또 빈 살만 왕세자나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그리고 트럼프 대통령까지도 국내적 문제가 우선인 상태다.
푸틴은 자신의 집권기간을 2036년까지 연장하기 위한 헌법 개정 중에 있고 빈 살만은 왕위 즉위를 위해 수많은 사람들을 감옥에 넣고 있다.

-이번 전쟁으로 세계 원유시장에는 몇년에 걸쳐 소화해야할 원유 재고가 발생할 것이다.
또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세계적인 운송, 교통 수요가 감소하면서 원유 소비는 기록적 속도로 줄고 있다. 이는 유가가 낮아진다고 해도 수요가 늘어나지는 않을 것이란 뜻이다.
지난 2001년 9.11 사태 이후 운송 여행 관련 원유 수요가 원래 예상했던 수준으로 회복된 것은 2004년이었다. 3년 이상이 걸렸다.

-지금 중국의 산업생산은 조금씩 살아나지만, 서구가 망가지고 있다. 이래선 중국 수요가 이어질 수 없다. 하루 800만에서 1200만배럴까지 수요가 줄어들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는 유가의 바닥이 어딘 지 알 수 없게 만든다. 우리는 20~30달러대를 전망하고 있지만 시장에서는 더 큰 약세를 전망하는 사람도 많다.

-미국의 셰일업계는 평균적으로 40달러대 유가가 필요하다. 맥킨지에 따르면 미국 셰일유정의 15% 정도만 35달러 이하에서도 원가경쟁력을 가진 것으로 분석된다.
벌써 셰일업계는 자금난에 들어갔고 파산설이 나돈다. 업체들은 감산에 나서고 신규 채굴을 중단하는 등 비용절감에 돌입했다. 여기에 ESG(환경·사회책임·기업지배구조) 투자 움직임, 전기차 전환 등도 셰일업계를 위협한다.

-이번 유가 하락은 지난 2014년과는 다르다. 그때는 월가가 셰일업계를 지원하면서 산유량이 감소한 정도지만 이제는 낮은 수익에 지친 투자자들이 셰일업계를 지원할 생각이 없다. 2016년 셰일업계의 공모주식수는 300억주에 달했지만, 이 사태 전인 지난해에도 공모주식수는 10억주에 그쳤다.
셰일업계의 리파이낸싱은 2016년에 집중적으로 이뤄졌다. 이런 자금의 만기는 5~7년이다. 또 다른 리파이낸싱이 곧 시작돼 향후 18개월 가량 진행될 것이다. 특히 이들에게 돈을 빌려준 은행들은 에너지 관련 익스포져가 높기 때문에 이를 줄이려고 안달이 되어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전략비축유 매입을 저유가를 막는 하나의 방법으로 추진하지만 이게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건 분명하다. 결국 셰일업계의 문제는 회사채 시장 전반에서 혼란을 만들 것이다.
재무부는 이런 혼란을 막기위한 정책을 검토하고 있다. 단기 자금을 대주고 나중에 혼란이 정리되면 상환받는 식이다. 당연히 셰일업계도 좋은 회사가 있고, 나쁜 회사가 있다. 그래서 재무부가 구제금융을 집행하는 데는 시간이 걸릴 것이다.



-다만 셰일업계는 장기적으로 경쟁력을 갖출 것이다. 미국의 셰일 인력과 장비는 일부 회사가 파산해도 어딜 가지 않고 미국에 남아 있다. 살아남은 회사들이 이를 인수하면서 장기적으로 더 큰 경쟁력을 갖추게될 것이다.

-러시아가 협상에 나서려면 궁극적으로 경제적 어려움이 커지면서 러시아인들의 불만이 커져야할 것이다.
러시아의 재정이 얼마나 버틸 지의 문제지만, 사회 복지 및 인프라 지출이 어려워지고 관료주의에 대한 내부 반발이 커질 수 있다.



뉴욕=김현석 특파원 realis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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