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단해만 보이던 애플의 아성이 흔들리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빚은 연쇄 악재가 애플을 덮쳤다. 첫 파동은 중국에서 왔다. 애플은 생산·소비 양쪽에서 중국 의존도가 매우 높다. 여기에 코로나19가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으로 번지자 글로벌 경기가 크게 출렁이면서 주가마저 급락했다.
19일 증권가에 따르면 지난해 사상 최대 실적을 올린 애플의 주가는 최근 한 달여만에 25%가량 폭락했다. 지난달 초 327.2달러로 사상 최고점을 찍은 이후 지난 16일 종가 242.2달러로 최저점을 찍었다. 시가총액으로 따지면 450조원 넘게 증발한 것이다.
지난해 하반기 출시한 아이폰11 선전으로 올 초까지 거듭 신고가 기록을 갈아치우던 애플에 제동이 걸린 것은 지난달부터다. 코로나19가 중국에서 확산한 여파로 중국 내 공장 가동이 중단되면서 스마트폰 생산에 차질을 빚었다. 업계는 아이폰 맥북 에어팟 등 중국 생산라인 가동률이 지난달 평균 50% 감소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코로나19에 소비심리가 크게 준 것도 뼈아팠다. 수요 부진으로 이어져 고가로 책정된 아이폰 출하량이 급감했다. 외신 등을 종합해보면 지난달 코로나19 여파로 중국 내 아이폰 판매량이 49만4000대를 기록했다. 전년 동월(127만대)에 비해 약 60% 곤두박질쳤다. 올 1월까지만 해도 애플은 중국 시장에서 230만대의 아이폰을 팔았다.
상황이 이같이 돌아가자 투자자들에게는 "절대 떨어지지 않는 주식"으로, IT(정보기술) 업계에서는 "애플 걱정은 하는 게 아니다"라고 자리잡은 인식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실제로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사진)는 "코로나19 영향으로 당초 설정했던 1분기 매출 목표 630억~670억 달러를 하향 조정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18일엔 중국을 제외한 전세계 애플 매장 460여곳을 무기한 폐쇄하기로 결정한 것도 향후 전망을 어둡게 하는 요소다.
내부 상황도 좋지 않다. 애플은 최근 잇따라 소송에서 패배하며 수조원 배상금을 물어줘야 할 처지에 놓였다. 이달 초 미국과 프랑스에서 진행된 '배터리 게이트' 집단소송에서 패소, 민사합의와 벌금형을 부과받았다. 애플이 구형 아이폰 성능을 고의 저하시켰단 의혹이 골자로 해당 소송은 국내를 포함해 각국에서 50여건 넘는 집단소송이 제기된 상태다. '특허 괴물' 미국 버넷엑스와의 특허 소송에서 패소하기도 했다.
각종 행사도 대부분 연기될 전망. 올 6월 개최 예정이던 애플의 대규모 연례행사 '세계개발자컨퍼런스(WWDC)'를 온라인 개최로 선회했다. 4년 만의 보급형 아이폰9(아이폰SE2·가칭)을 선보이는 3월 신제품 공개 행사도 연기될 것으로 예측된다.
쿡 CEO가 코로나19에 감염됐을 것이란 설까지 돌고 있다. 쿡 CEO는 지난달 29일 루시안 그레인지 유니버셜뮤직 회장의 생일 파티에 참석했었는데, 그레인지 회장은 코로나19 양성 판정을 받았다. 이 의혹에 대해선 애플 측은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로라 마틴 니덤앤컴퍼니 애널리스트는 "2월 중국 내 아이폰 판매량이 61%나 줄어 애플의 분기 실적이 수십억 달러 감소할 수 있다"며 "코로나19가 사라질 기미를 보이지 않아 3~4월에는 더 나빠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만 에어팟 등 웨어러블 기기와 애플 서비스 매출 수요가 견조하고 충성고객은 여전한 터라 이번 애플의 부진은 일시적일 것이란 반론도 제기된다.
최근 주가 폭락에도 불구하고 전체 미국 증시 상황에 비춰보면 애플은 최저점을 찍은 후 시장 예상보다는 선방하고 있다는 평가.
애플의 또다른 먹거리인 무선이어폰 에어팟 등 웨어러블 기기와 애플 서비스 매출은 여전히 견조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미국 음반산업협회에 따르면 미국 회계기준 1분기 애플의 서비스 매출(디지털 콘텐츠 스토어, 스트리밍, 애플케어, 라이센싱 등 포함)은 127억2000만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16.9% 증가했다.
김세환 KB증권 연구원은 "지난해부터 애플의 웨어러블 기기 연간 매출은 400억 달러를 넘어서고 있다. 올해 14억 인구의 인도 시장 온라인 판매를 시작으로 내년에는 첫 오프라인 소매점을 여는 것도 희망적인 대목"이라고 말했다.
생산차질을 겪고 있는 애플이지만 신제품 출시는 예정대로 진행할 가능성이 있다. 애플은 지난 18일(현지시간) 아이패드 프로와 맥북 에어 신제품을 깜짝 출시했다. 현재 iOS14 베타버전에서 보급형 모델로 4.7인치와 5.5인치 아이폰9를 개발하고 있다는 정보가 확인되는 것도 아이폰9의 상반기 내 출시 기대를 높이는 대목이다.
애플 내부 상황에 정통한 밍치 궈 TF인터내셔널증권 애널리스트는 "애플이 2020년 상반기에 아이폰9를 공급하며 그해 판매량은 최소 2000만대, 상황이 좋으면 3000만대를 판매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보급형·5세대 이동통신(5G) 투트랙 라인업 신제품 출시가 예정대로 이뤄지면 코로나19 타격을 줄일 수 있다는 관측이다.
김동원 KB증권 애널리스트는 "아이폰, 맥북, 에어팟 등 중국 생산라인 가동률은 이달부터 60%, 4월 80% 수준으로 회복될 것으로 추정돼 2분기부터 정상화 국면 진입이 예상된다"며 "미국, 유럽 등 중국 외 지역에서 애플 제품 수요가 견조한 증가세와 함께 충성도 높은 애플 고객의 수요성향 등을 고려할 때 하반기로 갈수록 애플 제품 수요 증가세는 뚜렷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배성수 한경닷컴 기자 baeba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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