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가 가중되는 상황에서 한·미 통화스와프만으로 환율시장을 안정세로 돌리기엔 무리라는 전망에 힘이 실린다. 금융위기 때인 2008년에도 한·미 통화스와프 체결 이후 한동안 진정 국면을 보이던 원·달러 환율은 다시 급등세로 돌아서기도 했었다.
천장 뚫은 원·달러 환율
최근 원·달러 환율은 거침없이 오르고 있다. 이날 서울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40원 오른(원화 가치 하락) 달러당 1285원70전으로 거래를 마쳤다. 이날 환율 상승폭은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3월 30일(43원50전) 후 가장 컸다. 장중 1296원까지 치솟으며 1300원 선 돌파를 눈앞에 두기도 했다. 장중 고점은 2009년 7월 14일(1303원) 후 11년 만에 가장 높았다.
공포에 질린 외국인의 이탈이 환율을 밀어올리는 역할을 했다. 외국인은 국내에서 첫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가 나온 지난 1월 20일부터 이날까지 유가증권시장에서 14조3160억원어치 주식을 순매도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인 2008년 한 해 외국인 순매도 금액(25조9000억원어치)의 절반이 넘는 금액이다. 주식 매각자금을 곧바로 달러로 환전하려는 외국인의 수요가 넘치면서 ‘달러 가뭄’이 이어지고 있다. 이날 원·달러 스와프포인트 1개월물 가격은 -3원50전으로 지난 4일(-4원)보다는 올라갔지만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스와프포인트는 은행 간 원화를 담보로 달러를 빌려주는 거래로 마이너스 폭이 확대되면 그만큼 달러 수요가 커졌다는 의미다.
여기에 미국 유럽 등 주요국 증시가 폭락하면서 마진콜(증거금 추가 납부 통지)이 발생한 것도 달러 수요를 부추겼다. 마진콜은 투자자가 주식을 담보로 돈을 빌렸을 때 주가가 하락하면 금융회사가 담보·증거금을 더 넣거나 대출을 줄일 것을 요구받는 것을 말한다. 미국과 유럽 주가지수를 기초자산으로 삼아 주가연계증권(ELS)을 대규모로 판매한 한국 증권사들도 마진콜에 대응해 달러를 매입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통화스와프에 과도한 기대는 금물
전문가들은 한·미 통화스와프가 환율시장의 심리적 안정을 어느 정도 회복시키는 역할을 할 것으로 보고 있다. 단기적으로는 환율시장이 조정 양상을 보일 것이라는 분석에 힘이 실린다. 이 같은 분위기를 반영하듯 이날 달러당 1285원70전에 마감했던 원·달러 환율은 역외 시장에서 오후 11시 기준 1255원60전으로 떨어졌다. 하지만 글로벌 경제위기의 압박을 완전히 해소하기는 힘들 전망이다.
2008년에도 한·미 통화스와프 체결 이후 환율시장은 한동안 안정된 모습을 보였지만 다시 오름세로 돌아선 바 있다. 2008년 10월 달러당 1400원대로 치솟았던 환율은 한·미 통화스와프 체결 후 1200원대로 떨어졌지만 연말께 다시 오름세로 돌아섰고 이듬해 3월에는1550원을 넘어서기도 했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한·미 통화스와프가 금융시장의 공포감을 크게 누그러뜨린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통화스와프가 ‘만병통치약’이 되리라고 과도한 기대를 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고경봉/서민준 기자 kgb@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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