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도야 우지마라 오빠가 있다"…남매의 기구한 삶에 담은 나라 잃은 설움

입력 2020-03-20 17:36   수정 2020-03-21 01:38

암울하던 일본 제국주의 치하를 살아낸 남매의 기구한 삶을 대변한 곡조가 그 유명한 ‘홍도야 우지마라’다. 이 노래는 일제 강점기의 애한을 담아 젓가락 장단에 맞춰 부르던 국민 저항의 대명사 격이었다. 대중에게 알려지게 된 시기는 1936년 7월 동양극장에서 공연된 악극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의 후속편(1938년 공연) 주제가로 불리면서부터다. 노래는 ‘머지않은 옛날, 구한말 개화시대에 철수란 대학생과 순이라는 여동생이 있었으니, 그들은 다정한 남매였던 것이었다. 그러나 이들은 배움을 뒷받침할 돈이 없어 순이는 이름까지 홍도라고 바꾸고 홍등가에서 뭇 사나이들에게 웃음과 노래를 팔며…’라는 대사가 노래 앞부분에 낭송되면서 본 가락을 불러낸다.

사랑을 팔고 사는 꽃바람 속에/ 너 혼자 지키려는 순정의 등불/ 홍도야 우지마라 오빠가 있다/ 아내의 나갈 길을 너는 지켜라// 구름에 쌓인 달을 너는 보았지/ 세상은 구름이요 홍도는 달빛/ 하늘이 믿으시는 네 사랑에는/ 구름을 걷어 주는 바람이 분다.(전문)

당시 이 노래를 부른 가수 김영춘은 20세의 청년이었다. 본명은 김종재. 1918년 경남 김해에서 태어난 그는 동광보통학교를 졸업하고 낙동강 건너 부산으로 가 양복 재단을 배웠다. 1938년 콜롬비아레코드사가 주최한 콩쿠르에 입상하면서 데뷔했다. 같은 해 동양극장에서 공연된 악극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속편)는 극작가 임선규가 대본을 썼고, 청춘좌의 차홍녀와 황철이 주연했다.

극 중에서 주인공 홍도는 화류계 생활을 하며 오빠를 공부시키고, 오빠는 순사(경찰)가 된다. 이후 홍도는 화류계에서 빠져나와 시집을 가지만, 과거가 탄로나 시어머니로부터 심하게 학대받는다. 어느 날 홍도는 시어머니에게 칼을 휘두르고 살인미수로 체포되는데, 이때 홍도의 손목에 수갑을 채운 이가 바로 친오빠다. 홍도는 북받치는 감정과 회한으로 몸을 가누지 못하고 통곡을 하고, 오빠도 눈물겨운 노래를 부른다. ‘홍도야 우지마라 오빠가 있다. 아내의 나갈 길을 너는 지켜라.’

일제 강점기 조선총독부 경찰은 경무국에서 총괄했다. 처음엔 헌병경찰제를 운용하다가 1919년 8월 20일 보통경찰제로 전환했다. 그해 3월 1일 만세운동이 전환의 계기였다. 1905년 을사늑약 후 12월 21일 통감부이사청관제(제267호)에 의해 경무부가 설치됐고, 1910년 6월 30일 경찰관서관제(제296호)에 의해 통감부 외국으로 경찰관서가 설립됐다. 중앙에 경무총감부, 지방에 경찰부·경찰서가 있었다. 이때 경무총감부장은 경무총장으로, 조선주차군(주둔군) 헌병대사령관이 겸직했다.

‘홍도야 우지마라’ 음반은 무려 10만 장 팔렸다. 가사 2절 ‘구름에 쌓인 달을 너는 보았지’는 당시 식민지 치하의 어두운 사회상을 암시한 구절이다. 일본 제국주의는 1933년부터 레코드음반취체규칙으로 음반과 유행가요를 통제했다. 1940년부터는 영화·연극·대중가요·국악·서커스 등에 등장하는 연예인들에게 기예증(技藝證)을 발급하고 매년 봄, 가을에 전시체제하 국민의 각오를 주제로 논술시험을 치르게 했다. 나라가 힘이 없으면 대중이 부르는 노래도 한을 품는다.

유차영 < 한국콜마 전무이사·여주아카데미 운영원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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