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의 시] 주홍 이야기 배수연 (1984~)

입력 2020-03-22 17:50   수정 2020-03-23 01:32

내가 좋아하는 주홍
노랑과 빨강이 끼어들지 않는
주홍을 알고 싶다면,
늙은 호박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지

옛날 옛날 따뜻한 저녁 하늘이
푸른 호박밭 위로 허물어졌다고
그 시간 세상의 얼굴들이 모두
호박빛으로 모서리를 녹였다고
태양의 빨강도
별의 노랑도
끼어들지 않는
그 시간에 주홍이 태어났다고

주홍, 내가 좋아하는 우리의 얼굴

시집 《가장 나다운 거짓말》(창비교육) 中

작년에 수확해 안방에 둔 호박에서 주홍빛이 새어나옵니다. 푸른 호박은 어느새 허물어져 내리던 하늘의 색채로 물들었네요. 주홍빛이 따스합니다. 호박 바닥이 흥건하게 젖었습니다. 호박이 썩어가는 징조입니다. 호박 안의 씨앗들이 봄이 왔다고 기지개를 켜고 있는가 봅니다. “주홍, 내가 좋아하는 우리의 얼굴”입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때문에 바깥출입을 삼가고 있지만, 봄과 함께 사라지면 햇볕도 주홍일까요? 노랑과 빨강이 끼어들지 못하는 주홍, 주홍으로 빛나는 꽃나무들이 먼저 바깥으로 걸어나가고 있군요.

이소연 시인(2014 한경신춘문예 당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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