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울어진 운동장'인 공매도 시장을 외국계 금융회사가 독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불법 공매도를 저지르는 주체도 외국계 금융회사였다.
23일 KRX공매도종합포털에 따르면 올해 들어 이달 18일까지 유가증권시장과 코스닥시장의 공매도 잔고 대량 보유자 공시 6662건 중 외국계 금융회사 공시가 93.5%에 달하는 6227건을 기록했다.
2016년 말 도입된 공매도 잔고 대량 보유자 공시는 투자자나 그 대리인이 공매도 잔고가 해당 종목 상장 주식 총수의 0.5% 이상 되면 의무적으로 공시하는 것이다. 물량 비중이 0.5%가 되지 않아도 공매도 금액이 10억원이 넘으면 공시 대상이다.
외국 금융회사 중 공매도 잔고 공시를 가장 많이 한 곳은 영국계 금융회사 '모간스탠리 인터내셔날 피엘씨'로, 전체 공시의 34.2%인 2279건에 달했다. '크레디트 스위스 씨큐리티즈 유럽 엘티디' 1077건(16.2%), '메릴린치인터내셔날' 1034건(15.5%), '골드만삭스인터내셔널' 551건(8.3%), '제이피(JP)모간 증권회사' 547건(8.2%), '유비에스에이쥐(UBS AG)' 432건(6.5%) 등 순이었다.
올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주식 폭락장이 연출될 때도 외국계 금융사들이 적극적으로 공매도에 나선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공매도는 주가 하락이 예상되는 종목 주식을 빌려 판 뒤 실제로 주가가 내려가면 싼값에 다시 사들여 빌린 주식을 갚아 차익을 남기는 투자기법이다. 그야말로 '외국인 놀이터'인 셈이다.
공매도 잔고 대량 보유자 공시에서 국내 증권사·자산운용사 등 금융회사는 422건으로 6.3% 수준이고 개인 투자자는 13건으로 0.2%다. 국내 금융회사 중에는 메리츠증권이 80건(1.2%)으로 가장 많았고, 안다자산운용 52건(0.8%), 신한금융투자 46건(0.7%), 한양증권 31(0.5%), NH투자증권(0.4%) 등 순이었다. 개인 투자자로는 원모씨 1명이 13건의 공시를 냈다.
외국 금융회사들은 개인 투자자 비중이 월등히 큰 코스닥시장에서 더 활발히 공매도를 펼쳤다. 시장별로 코스닥시장은 4622건으로 69.4%였고 유가증권시장 공시는 2040건으로 30.6%였다.
불법 공매도 역시 대부분 외국 금융회사에서 자행되고 있다. 국내에서는 증거금을 내고 주식을 빌려와 파는 차입 공매도만 허용되고 빌려온 주식 없이 일단 매도부터 먼저 하는 무차입 공매도는 불법이다.
금융감독원이 더불어민주당 김병욱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10년부터 지난해까지 10년간 불법 공매도로 제재를 받은 금융회사는 101곳에 달했는데 이 중 외국계 금융회사가 94곳으로 93.1%를 차지했다. 국내 금융회사는 7곳이다. 이 중 45곳에 과태료가 부과됐고 56곳은 주의 처분만 받고 사건이 종료됐다. 솜방망이 처벌인 셈이다.
금융위원회는 불법 공매도에 대한 징역·벌금 등의 형벌 부과와 부당이득의 1.5배까지 환수할 수 있는 과징금 부과 근거를 마련하는 내용의 자본시장법 개정을 추진해 왔지만 오는 5월 20대 국회 임기 종료와 함께 관련 법 개정안은 자동 폐기될 운명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21대 국회가 구성되는 대로 불법 공매도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자본시장법 개정을 신속히 다시 추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경닷컴 뉴스룸 open@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