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코스닥 기업들이 발행한 전환사채(CB)와 신주인수권부사채(BW)를 묶어 한꺼번에 유동화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CB, BW의 조기상환 청구 시점이 대거 다가오면서 회사채 발행이 어려운 코스닥 기업들이 줄줄이 유동성 위기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어서다.
▶본지 3월 6일자 A1, 12면 참조
금융위, 메자닌 대책 마련 중
23일 금융당국과 증권업계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늦어도 다음달까지 ‘코스닥 메자닌 조기상환 대책’을 내놓을 계획이다. 메자닌이란 CB, BW와 같이 주식으로 전환하거나 신주를 인수할 수 있는 권리가 붙은 채권을 말한다.
주식과 채권의 중간 성격 상품으로 1층과 2층 사이에 있는 라운지에 빗대 메자닌이라고 부른다. 신용등급이 낮아 회사채를 발행하기 어려운 코스닥시장 상장사가 많이 활용하는 자금조달 수단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메자닌 차환 발행에 어려움을 겪는 코스닥 기업들이 자금 경색에 몰릴 것이란 시장 우려가 커지고 있어 대책을 마련 중”이라고 했다. 이어 “메자닌을 발행한 코스닥 기업들의 자금조달 상황과 메자닌에 투자한 사모펀드의 환매 요청 현황을 파악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금융위는 코스닥 기업들이 발행하는 메자닌을 한데 묶어 신용보증기금이 보증하는 ‘프라이머리 채권담보부증권(P-CBO)’으로 유동화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 자체 신용으로 자금을 조달하기 어려운 중소 기업들에 신용을 보강한 뒤 정부와 금융회사들이 조성하는 채권안정펀드 등을 통해 P-CBO를 매입해 주는 구조다.
산업은행이나 성장사다리펀드 등 정책금융을 활용해 메자닌을 인수하는 별도 펀드를 만드는 것도 검토 안 중 하나다. 정책금융이 주요 출자자가 되고 여기에 민간 자금을 더해 규모를 키우면 메자닌 차환이 어려운 기업들의 숨통을 터 줄 수 있을 정도의 자금이 마련될 수 있을 것이란 계산이 깔려 있다.
4월부터 조기상환 청구 쏟아질 듯
금융위가 코스닥 메자닌 지원에 나선 것은 코스닥 업체들이 발행한 메자닌에 조기상환(풋옵션) 행사 시점이 대거 도래하고 있기 때문이다. 2018년 4월 코스닥벤처펀드가 출범한 후 코스닥 기업들의 CB, BW 발행이 급증했다. 2018년과 2019년 대기업을 제외한 코스닥시장 상장 중소기업이 발행한 메자닌 규모는 총 8조7862억원에 달한다.
이들 메자닌 대부분이 2년 뒤 조기상환이 가능한 권리(풋옵션)가 붙어 있다. 코스닥벤처펀드 출범 이후 우후죽순 찍어 냈던 CB, BW의 풋옵션 행사가 다음달부터 본격적으로 돌아오며 시장의 뇌관이 될 우려가 커지고 있다. ‘라임사태’가 터지며 메자닌에 투자했던 사모펀드들은 펀드 환매에 대응하기 위해 상당수가 풋옵션을 행사할 예정인 것으로 전해졌다.
코스닥 기업들이 투자자들의 조기상환 요구를 들어주기 위해 차환 발행을 해야 하지만 상황은 어렵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시장이 경색되면서 자금조달 환경이 악화됐기 때문이다.
한 코스닥시장 상장사 대표는 “코로나19가 확산하면서 은행을 포함한 기존 자금조달 창구가 완전히 막혔다”고 말했다. 그는 “실적이 악화된 데다 주가 역시 급락하며 시장에서 유상증자나 신규 CB를 발행해 자금을 조달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라고 했다.
업계에선 메자닌 지원 대책에 포함되는 대상을 선정하는 것에는 신중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메자닌으로 연명하는 ‘좀비기업’이 정부 지원 대상에 들어가거나 운용이 부실한 사모펀드의 수익을 지원해 주는 부작용이 없도록 ‘옥석 가리기’가 전제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수정/나수지 기자 agatha77@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