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03월23일(16:40) 자본시장의 혜안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현대백화점그룹이 종합유료방송사업자(MSO) 현대HCN을 팔기로 결정했다. 작년 LG유플러스의 CJ헬로(현 LG헬로비전) 인수 및 SK브로드밴드의 티브로드 인수에 이어 올해 유료방송 시장이 다시 한번 '지각 변동'을 겪을 예정이다.
23일 재계에 따르면 현대백화점그룹은 최근 LG유플러스 및 SK브로드밴드 등 경쟁 유료방송 사업자들에 현대HCN 매수 의사가 있는지 타진했다. 현대백화점그룹은 현대홈쇼핑(38.34%), 현대쇼핑(11.05%), 현대백화점(11.03%), 현대그린푸드(5.79%)를 통해서 현대HCN 지분 66.21%를 보유하고 있다. 구체적인 매각 방식은 아직 결정되지 않았으나 조만간 주관사를 선정해 매각작업을 시작할 예정이다.
현대HCN은 케이블 TV를 중심으로 디지털 방송과 초고속 인터넷, 인터넷 전화 등을 서비스하는 회사다. 유료방송 시장점유율은 작년 6월말 기준 4.07%(134만명)로 업계 6위다. 이미 포화상태인 유료방송 시장에서 1~3위를 점하고 있는 KT, LG, SK 통신 3사가 추가로 가입자를 확보해서 이익률을 높이려면 하위권 사업자를 인수해야 하는 구도다. 재무구조가 튼실하고 서울과 수도권에서 가입자를 많이 확보하고 있는 현대HCN은 하위권 사업자 중에서도 가장 매력적인 매물로 꼽힌다.
한 통신기술(IT) 업계 관계자는 "1~3위 사업자가 모두 관심을 가지고 탐낼 만한 매물"이라며 "특히 2~3위 사업자의 점유율이 24%로 거의 동일한 만큼, 추가 인수를 통해 2위 굳히기에 나서려는 경쟁이 치열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현대HCN 매각전이 시작되면 당초 올 상반기 중 시작되려던 딜라이브 매각은 다소 늦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잠재매물 중 가장 매력적"
유료방송 시장은 한정된 가입자 수를 두고 여러 종류의 사업자가 경쟁하는 관계다. 케이블 TV 네트워크로 출발해서 성장한 MSO계열과 인터넷 망을 통해 방송을 서비스하는 IP TV 사업자 계열로 나눌 수 있다.
특히 최근에는 성장세가 더 가파른 IP TV 사업자가 MSO 사업자를 사들여서 점유율을 확보하는 일이 늘고 있다. 지난해 LG유플러스(작년 6월말 유료방송 시장점유율 12.44%)가 MSO 사업자 중 1위(12.28%)였던 CJ헬로의 지분 50%+1주를 8000억원에 인수한 것이 대표적이다. 곧이어 SK브로드밴드(14.70%)가 태광산업 계열 MSO인 티브로드(9.33%)를 1조5000억원에 사들인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 결과 KT LG SK 통신 3사가 유료방송 시장에서도 1~3위를 차지하게 됐다.
현대HCN의 유료방송 시장점유율은 4.07%(134만명)로, 4위 딜라이브(6.09%), 5위 CMB(4.73%)에 이어 6번째다. 이미 포화상태인 유료방송 시장에서 과점 중인 통신 3사가 추가로 이익을 올리기 위해선 M&A 밖에는 길이 없다.
그리고 현대HCN은 4~6위 중에서도 가장 매력적인 매물이다. 채권단이 보유하고 있는 딜라이브는 벌써 몇 차례 시장에 나왔지만 재무구조가 좋지 않아 번번이 거래가 성사되지 않았다. CMB는 주로 지방에 네트워크가 있는 것이 약점으로 꼽힌다. 반면 현대HCN은 2018년 서울 서초지역 네트워크(딜라이브서초케이블)를 인수하는 등 주로 서울 수도권 지역에 가입자가 많고 재무구조도 튼실하다. 지금껏 여러 차례 매각설에 휩싸인 이유다.
◆몸값 극대화·투자여력 확보
현대HCN의 작년 매출액은 2928억원, 영업이익은 408억원이었다. 영업이익률이 13.9%로 좋은 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백화점그룹이 현대HCN 매각을 결정한 것은 지금이 가장 몸값을 높이 받을 수 있는 여건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일단 과거 이 분야 M&A의 제약 요인이었던 '결합 승인 리스크'가 사라졌다. 공정거래위원회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작년 말 LG유플러스의 CJ헬로 인수, SK브로드밴드의 티브로드 합병 건을 잇달아 승인했다. 유료방송 시장이 1강(KT)과 2중(LG 및 SK)로 재편된 배경이다.
현대HCN으로서는 특히 2~3위 사업자의 점유율이 거의 동일한(각 24%대) 지금이 4% 점유율의 가치를 극대화하는 시점이라고 볼 수 있다. 게다가 조만간 4위 딜라이브 매각전이 다시 시작될 전망이다. 인수 후보가 거의 겹치는 만큼 조금이라도 먼저 매각을 시작하는 게 경쟁구도 형성에 유리하다.
코로나19 사태 등으로 현금을 확보하고 사업구조를 재편해야 할 필요성이 커진 것도 한 원인이다. 상장사인 현대HCN의 시가총액은 약 3000억원이지만 유료방송 사업자의 경영권은 가입자 1인당 가격으로 계산한다. 134만명 가입자 1인당 가치를 50만원으로 잡으면 현대HCN의 가치는 약 6500억~7000억원에 달할 전망이다. 약간 낮춰잡아 40만원으로 잡는다 해도 5300억원 수준이다. 자금을 확보해 두면 위기에 대응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매물로 나오는 다른 기업을 사서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삼을 수 있다.
◆LG·SK "이번엔 꼭 사야"
현대HCN 매각 의사를 접한 잠재 인수후보들은 즉각 검토에 들어갔다. 특히 SK브로드밴드를 거느리고 있는 SK텔레콤은 다양한 M&A를 성공시키며 회사를 키워 온 박정호 사장을 중심으로 현대HCN 인수를 추진할 예정이다. SK텔레콤은 2016년에 CJ헬로를 인수하려다 독과점 문제로 M&A에 실패한 전례가 있다. 이는 작년 LG유플러스의 CJ헬로 인수로, 그리고 SK브로드밴드의 티브로드 인수로 이어졌다.
하현회 부회장이 이끌고 있는 LG유플러스는 현대HCN을 인수해 '2위 굳히기'에 나설 예정이다. KT는 위성방송 KT스카이라이프를 합해 31% 점유율을 확보하고 있지만 1위 자리 수성을 위해서라도 매물로 나오는 후보를 적극 검토하겠다는 입장이다.
한 IT 업계 관계자는 "내가 먹지 않으면 남이 먹는 시장"이라며 "현대HCN을 사지 않으면 울며 겨자먹기로 딜라이브나 CMB에 '러브콜'을 던져야 할 수도 있는 만큼 인수 후보들 모두 적극적으로 나설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상은 기자 se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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