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논설실] "무조건 빨리 파세요"…누가 '부동산 폭락' 공포팔이 하나

입력 2020-03-25 09:30   수정 2020-03-26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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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한 달 전에 그랬잖아요. 보세요, 주가도 그렇고 서울 집값도 우수수 떨어지고 있잖아요. 무조건 빨리 집 파세요. 부동산 대폭락 시대가 임박했어요. 이 기회를 놓치면 폭망합니다."

요즘 유튜브에서 쉽게 볼수 있는 '부동산 폭락' 공포팔이 방송이다. 자칭 경제 및 부동산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코로나발(發) 세계 경제 위기가 가시화되자 이런 자극적인 내용으로 '손님 끌기'에 여념이 없다.

내용도 거의 비슷비슷하다. 기존의 부동산 시장 비관론자들이 주로 얘기하던 경제 상황 분석과 통계 등이 재활용되고 있다. 글로벌 경기 침체, 고령화, 생산가능인구 감소, 규제 일변도의 정부 정책, 오랫동안 유지된 집값 상승 추세, 글로벌 경제의 뇌관인 중국의 경제위기 가능성 등이 대표적이다.

◆정말 서울 집값은 폭락할까

주식, 금, 부동산 등 주요 자산 가격을 예측하는 것은 '신의 영역'에 속한다는 말이 있다. 세계 최고의 경제전문가들이 모여 있는 미국 월가에서 나온 말이다. 이번 코로나 쇼크의 영향으로 미국 주가가 급등락하는 것을 보면 최고의 전문가들이라는 사람의 예측도 쉽게 믿을 수 없다는 것이 드러난다. 변수들이 워낙 다양하고 생각지도 못하는 돌발변수도 갑자기 불거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다수 전문가들은 시장의 '큰 물줄기(하락 혹은 상승 등 방향성)'를 제시하고 여기에 영향을 미칠 변수들의 강도에 따라 시장이 어떻게 간다는 식의 전망을 내놓곤 한다.

국내 경제전문가들이 내다보는 부동산 시장은 현재로는 급락할 가능성이 적지만 약세장이 펼쳐질 것이라는 게 대체적이다. 정부가 고가주택 대출 규제를 강화했고, '코로나 쇼크'로 글로벌 금융·실물시장이 휘청이고 있어 집값 상승을 내다보기 어렵다는 분석이다. 0%대 초저금리가 이어져도 예전과 달리 시중 자금이 부동산으로 쏠리기 힘들 것이란 전망도 많다. 자산시장도 결국 경기와 보조를 맞추게 마련이다. 지금처럼 불황이 이어지면 서울 집값 역시 '홀로 상승'을 이어가기 어렵다. 1997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에서 이런 현상이 두드러졌다.

전문가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하는 부동산 시장 방향을 결정할 결정적 변수는 '코로나 사태의 장기화 여부'다. 치료제나 백신이 개발돼 '코로나의 전쟁'에서 획기적인 전기가 마련되면 세계 경제가 급반등하는 등 제자리를 찾을 것이란 분석이 적지 않다. 신종플루, 메르스, 사스 등 신종 전염병이 창궐했을 때도 자산시장이 급락한 뒤 급반등하는 모습을 보였다.

◆고장난 시계도 하루 두 번 시간을 맞춘다

국내에서 '부동산 대폭락론'이 본격적으로 제기되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 초부터다. 공포팔이들은 1997년 외환위기를 겪고 집값이 급반등하자 '집값 거품론'을 제기했다. 100%에 근접한 주택보급률, 급격히 진행 중인 고령화 추세 등을 내세워 '일본식 집값 폭락'이 조만간 도래할 것이라고 공포를 조성했다.

통계와 경제지표들은 해석에 따라 크게 왜곡될 수 있다. 자신의 주장이 옳다는 것을 우기기 위해 유리한 통계와 지표를 내세우면 그럴듯하게 보일 수 있다. 당시 '미친 부동산' '부동산 대폭락 시대' 등으로 공포팔이에 나선 자칭 전문가 탓에 많은 사람들이 현혹되기도 했다. 이들은 집 사기를 포기했다가 집값이 크게 올라 낭패를 봤다. "돈을 번 사람은 '집값 폭락'을 내세워 책을 팔고 강연을 한 공포팔이들 밖에 없다"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부동산 폭락론'은 경제가 침체될 때면 어김없이 나오는 레퍼토리다. 국내에서는 자칭 전문가라는 사람이 20여 년째 폭락론을 주장하고 있다. 자산시장과 경기 사이클은 상승 국면이 있으면 하락 국면이 있는 게 상식이다. 집값이 가파르게 오를수록 급락할 가능성은 늘 배제하기 어렵다. 세계 경제와 부동산 시장이 장기 상승을 누렸다면 언제가는 침체를 맞을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그게 언제냐"는 것이다. 고장난 시계도 하루 두 번 시간을 정확히 맞추듯, 언제가는 공포팔이가 들어맞을 것이다.

◆집값 급등도 부작용 많지만 집값 급락은 서민에 더 치명적이다

집값 급락은 집값 급등보다 더 심각한 문제를 낳는다. 부동산 담보가치 하락에 따른 금융기관 부실화를 먼저 꼽을 수 있다. 우리 경제 뇌관인 가계 부채 문제를 폭발시킬 수 있고, 이것이 금융 시스템 마비로 증폭될 수 있기 때문이다. 가계 부채의 상당수는 부동산 구입과 관련된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이 일어나면 경제가 파탄난다. 자금 경색으로 인한 기업 도산도 빈번해진다. 경기 침체로 일자리가 줄면 서민들이 가장 타격을 받는다. 부동산 침체기에는 주택건설, 분양, 이사 등이 크게 급감한다. 공사현장 일용직, 장판 및 도배를 포함하는 인테리어, 이사, 가구 생산 등 주로 서민 관련 일자리가 크게 줄어든다.

국민 주거안정도 위협받는다. 부동산 담보가치 하락으로 주택에 깔린 은행 대출금도 갚지 못하는 소위 '깡통주택'이 속출하게 된다. 서민들은 전세금을 떼일 가능성도 있다. 2012년 수도권 곳곳에서 이런 현상들이 나타나 사회문제가 되기도 했다.

◆'부동산 경착륙' 대비한 정책도 필요

지금 집값이 어떻게 될 것인지 예측하는 것은 쉽지 않다. 중요한 것은 집값 하방 압력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경제와 부동산 시장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려면 여러가지 변수들을 고려해 돌발적인 사건은 물론 최악의 시나리오에도 대비해야 한다. 지금처럼 주택정책의 유연성이 없는 상황이라면 코로나 위기 후 급반등이나 코로나 장기화에 따른 집값 급락에 제대로 대처하기 어렵다.

향후 부동산시장이 어떻게 움직일 지 예단하기 어렵지만 극단적인 두 가지 상황 모두 경제와 서민 주거 안정에 치명적이다. 주택시장 움직임에 기민하게 대처해 필요한 정책을 준비하고 시행하는 것이 필요하다. 집값 안정을 이루고 급락을 막아야 한다.
규제를 풀어도 금방 효과가 나타나기 않는다는 점을 감안해 미리 미리 준비해야 한다. 규제일변도에서 벗어나 큰 그림을 보고 다가올 경제파고에 적극 대처하는 게 시급하다. 시장이 한 번 방향을 정하면 되돌리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김태철 논설위원 synerg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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