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우주국(ESA)의 플랑크 위성이 2009년부터 4년여 동안 우주 공간을 정밀하게 관측해 계산한 우주(코스모스)의 나이는 138.2억 년. 이를 지구의 1년으로 환산한 것이 우주력이다.
우주력의 한 달은 10억 년, 하루는 3786만 년이나 된다. 지구상에 처음 포유류가 등장한 때는 우주력 12월 26일, 인류의 선조들은 우주력의 마지막 1시간 중 59분 이상을 원인(猿人)에서 진화한 수렵채집인으로 살았다. 인류가 농경과 산업, 문명을 일군 것은 그 나머지 1분 동안 벌어진 일이다.
광대무변한 우주의 시공간에서 현재 우리가 처한 위치는 이렇게 미소(微小)하다. 1977년 발사된 미국 항공우주국(NASA)의 보이저 1호가 보내온 태양계의 가족사진에서 지구는 너무 작아서 눈을 부릅뜨고 찾아봐야 할 정도였다. 당시 보이저호가 은하 저편으로 싣고 갈 성간 메시지를 만들었던 천체 물리학자 겸 과학저술가 칼 세이건(1934~1996)이 이를 ‘창백한 푸른 점(Pale Blue Dot)’이라고 명명한 이유다.
《코스모스: 가능한 세계들》은 칼 세이건의 세계적 베스트셀러 《코스모스》의 후속작이다. 보이저호의 성간 메시지 프로젝트 기획자였다가 세이건과 사랑에 빠져 일과 인생의 동반자가 됐던 앤 드루얀이 《코스모스》의 책 출간 및 다큐멘터리 방영 40주년을 기념해 내놓은 역작이다. 동명의 다큐멘터리도 이달에 방영을 시작한다.
책의 큰 주제와 흐름은 전작과 비슷하다. 저자는 ‘창백한 푸른 점’을 보며 세이건이 가졌던 연민과 걱정, 우리 행성이 방대하고 차가운 어둠 속에서 지탱하는 생명을 보호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바탕으로 세이건과 자신이 소중하게 여겨온 이야기들을 펼쳐놓는다. 지난 40년간 과학이 이룩한 성과와 세이건이 미처 소개하지 못한 과학사의 탐험가들, 140억 년 전 태초의 대폭발(빅뱅)부터 지금까지 수없이 명멸해온 지구와 다른 세계의 이야기가 흥미진진하다.
드루얀은 과학과 과학자에 대한 경의를 표하면서 과학이 미래라는 ‘가능한 세계’를 낙관적으로 바꿔줄 유일한 길이라고 역설한다. 그러면서 과학뿐만 아니라 종교, 역사, 문학, 예술 등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지구와 인간, 생명의 기원과 존재 조건에 대한 이야기를 유려하고 섬세한 문체로 풀어놓는다. 과학을 예술과 역사, 신화와 만나게 하면서 우주적 관점에서 인간의 본질을 다시 보고 과학적으로 각성, 행동하라고 촉구한다.
책은 전작과 마찬가지로 13개 장으로 구성돼 있다. 바이러스 같은 미물에서 곤충과 인류 같은 동물에 이르기까지 생명이 어떻게 등장하고 발전했는지, 생명의 기원에 대한 최근의 과학적 연구 성과를 들려준다. 한 개인의 모든 기억과 생각, 두려움, 꿈으로 이뤄진 고유한 배선도인 커넥톰(connectome)을 성간 탐사선에 실어보내 다른 세계와 소통하는 미래도 그려 보인다.
천체물리학과 화학, 생물학 등 학제간의 완고한 벽을 넘어 코스모스 연구의 새 지평을 열었던 세이건의 이야기와 지구 바깥 우주에 지적 생명체가 존재할 가능성, 토성의 위성 엔켈라두스에 있는 액체 바다의 존재를 확인해준 토성 탐사선 카시니호의 공로와 최후, 사라진 고대문명의 잊힌 문자를 해독하기 위해 애썼던 영국 의사 토머스 영에서 시작된 양자역학 연구 등의 이야기가 꼬리를 문다.
이 책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저자의 섬세한 눈길로 포착하고 찾아낸 과학자들의 숨은 이야기다. 아폴로 계획이 수립되기 50여 년 전에 달 탐사 상세 계획을 세운 유리 콘드라튜크, 벌들의 언어 체계를 분석해 인간이 아닌 지적 생명체와의 첫 만남을 가능케 한 카를 폰 프리슈, 나치군에 포위된 채 80만 명이 굶어 죽어가는 도시에서 온갖 식물의 종자를 미래의 생물 다양성 자원으로 지켜낸 과학의 순교자 니콜라이 바빌로프….
특히 우주선이 행성이나 위성을 근접 비행하면서 그 천체의 중력으로부터 추진력을 얻어 다른 행성으로 이동할 수 있는 길을 연 콘트라듀크에 대해서는 “1973년 매리너 10호 이래 우주시대의 모든 발견은 그에게 빚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경의를 표한다. 소년 시절, 인류의 우주탐사가 실현되는 미래를 상상하며 가상의 신문기사와 제목으로 꿈을 키웠던 세이건의 이야기는 무릎을 치게 한다.
과학자들의 열정과 헌신에도 불구하고 지구의 미래는 낙관하기 어렵다. 인간이 지구에 초래한 악영향으로 인해 ‘인류세’의 대멸종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언젠가 태양의 연료가 소진돼 지구가 생명 거주가능 영역에서 제외되면 인류가 지구를 떠나 화성, 해왕성의 위성인 트리톤으로, 혹은 태양계를 벗어나 성간 우주로 이동해야 하는 때가 올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저자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 그는 한국어판 서문에서 “세계 과학자들의 말을 마음에 새긴다면, 그리고 행동한다면, 이 재앙을 충분히 멈추고 되돌릴 수 있다”며 “생명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기본 요소들, 공기와 물과 환경과 같은 요소들을 돈만큼, 아니 돈보다 더 아껴야 한다”고 강조한다.
서화동 선임기자 firebo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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