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에서 학생이 사라졌다. 교수도 덩달아 사라졌다. 가상공간에만 존재할 뿐이다. 이번 봄학기 개강은 이미 2주 늦춰졌다. 대학은 사이버대학으로 변했다. 나는 실시간 화상강의를 고집한다. 학생들과 직접 소통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학생들은 강의 시작 시간에 맞춰 자신들이 선택한 가장 편한 공간에서 접속해 온다.
수강생 중에는 중국 후베이성 우한에서 접속하는 학생도 있다. 이 모든 사태의 진원지, 바로 그 우한이다. 내 학생은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우한에 갇혀버렸다. 겨울방학 때 귀국했다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터지고, 중국 당국이 지역을 봉쇄하면서 외출이 금지됐다. 한국으로 그를 데려다줄 교통편은 막혔다. 온라인 수업만이 그를 구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다.
또 다른 학생은 지난 1년간 프랑스 파리에 있는 국제기구에서 인턴을 끝내고 막 귀국했다. 코로나 팬데믹(감염병 대유행)의 새로운 진원지가 된 유럽에서 말이다. 어제 인천공항으로 입국하면서 코로나19 감염 여부를 가리는 테스트를 했단다. 결과는 아직 모른다. 온라인 수업이 아니면 그는 이 수업에 참석할 수도 없다.
수업은 ‘코로나 사태와 세계 경제’다. 이번 학기에 신설한 강의다. 세계가 이번 봄을 어떻게 맞이하는지 보여주면서 강의를 시작했다. 미국 워싱턴, 벚꽃이 만발한 호수 주변에는 노란색 테이프가 행락객을 차단하고 있다. 일본 도쿄, 우에노공원에는 벚꽃 맞이 인파가 넘친다. 흰색 마스크를 쓴 사람들은 저마다 추억 담기에 열중하고 있다. 중국 우한, 출입이 봉쇄된 우한대를 노란색 무인승용차가 부드럽게 질주하고 있다. 5세대(5G) 스트리밍 서비스로 만발한 벚꽃을 중국 전역에 생중계하는 중이다.
코로나19에 대한 대처는 나라마다 제각각이다. 수학문제 풀 듯 단 하나의 정답은 없다. 마땅한 해법도 없다. 그 국가의 역량, 제약 여건, 문화를 반영한 대처만이 있을 뿐이다. 그래도 두 가지는 분명하다. 그 하나는 전문가가 아닌 정치인이 나서면 초기 대처는 실패한다는 것, 또 하나는 코로나19 대처는 최선의 답이 없는 선택의 문제라는 것이다.
코로나19 같은 전염병은 처음 확진자가 나온 이후 얼마 동안은 사회적 감염이 더디다가 어는 순간 폭발적으로 증가한다는 것이 학계의 정설이다. 그래서 초기 전문가들의 경고는 늘 지구의 종말을 연상케 할 만큼 암울하다. 그런데 그들의 미래를 내다보는 식견은 묵살되기 일쑤다. 사회 불안을 야기한다, 정치 일정에 지장을 준다 하는 이런저런 이유로다. 처음 코로나19가 터진 중국이 그랬고, 한국도 그랬고, 유럽·미국·일본이 다 그랬다. 그렇게 ‘골든타임’은 지나간다.
정책당국은 코로나19도 잡고 경제도 살리고 싶겠지만, 그 둘을 동시에 잡을 수 있는 ‘신비의 묘방’은 없다. 강력한 감염 차단 정책을 선택하면 경제적 파장을 각오할 수밖에 없다. 국경 봉쇄, 외출금지령 속에 식당, 카페, 공연, 스포츠 행사 등 소비자와 생산자가 같은 장소에 있어야 가능한 서비스산업은 직격탄을 맞는다. 경제적 파탄이 우려되면 소극적으로 대처할 수밖에 없다. 정부 당국의 선택지는 극단적으로 표현하면, 의학적 파탄과 경제적 파탄 사이의 선택이다. 잔인한 선택지이지만 피할 수는 없다.
학생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둘 중 어떤 것을 선택할 것인가. 모두가 적극적 차단을 택했다. 딱 한 명만 빼고. 건강이 망가진 뒤에 경제가 무슨 소용이냐는 것이 이유였다. 경제만능주의에 빠져서는 안 된다는 학생도 있었다.
수업이 끝나갈 때, 프랑스에서 귀국한 학생이 환호성을 질렀다. 네거티브! 그의 스마트폰으로 검사 결과가 전달된 것이다. 순간 온라인상의 모두가 환호했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코로나19 사태도 해피엔딩으로 끝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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