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相生보다 처벌 늘릴 '상생협력법'

입력 2020-03-26 18:10   수정 2020-03-27 00:14

중소벤처기업부가 상생조정위원회를 설치·운영하기 위해 시행령안을 만들고 오는 30일까지 의견수렴을 하고 있다. 중기부는 이 위원회가 중소기업기술을 보호하고, 수탁·위탁거래를 공정하게 이끌 수 있다고 주장한다. 중기부의 이런 주장과 달리, 법적 근거도 없이 시행령을 통해 중기부의 통제 권한을 강화하려는 의도가 읽힌다. 결과적으로 중소기업의 발전을 저해하고 국민경제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우려된다.

이 위원회의 구성을 보면 중기부의 속내가 엿보인다. 중기부 장관이 위원장이고, 중기부 차관, 공정거래위원회 부위원장, 대검찰청·경찰청·특허청 차장, 중소기업기술분쟁조정·중재위원회와 수·위탁분쟁조정협의회의 위원장은 당연직 위원이다. 위원 수는 중기부 장관이 위촉하는 위촉직 위원 등을 포함해 총 17명 이내다. 재적 위원 과반수 출석으로 개의하고, 출석위원 과반수로 의결하다 보니 중기부가 위원회 운영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갖는다. 중기부 이외의 부처는 들러리에 불과하다. 사실 시행령 개정 추진과정에서도 다른 부처와는 상의조차 없었다는 후문이다.

이 위원회가 잘 작동할지 의문이다. 위원회는 기술분쟁과 불공정 거래에 개입해 조정하는 업무를 수행한다. 위원들이 다양하게 제기된 기술분쟁을 이해하고 해결할 능력이 있는지 알 수 없다. 기술분쟁은 매우 ‘기술적’인 문제로 전문기관과 전문가의 판단이 중요하다. 두 당사자의 충분한 해명도 문제해결을 위해 긴요하다. 민사소송법 등의 법절차가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이 모든 것은 이 위원회의 능력 밖이다.

불공정 거래에 개입할 수 있다는 시행령안 조항은 이해하기 어렵다. 불공정 거래의 소관부처는 공정거래위원회다. 현행법상 중기부는 위·수탁 거래에 대한 직접적인 제재가 불가능하다. 다만 위법 사항이 있는 경우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촉진에 관한 법률(상생협력법)에 따라 공정위에 관련 조치를 요구할 수 있을 뿐이다. 법률에 근거하지도 않고 시행령으로 이 위원회는 특정 거래를 불공정한 거래라고 자의적으로 인지하고 사적 계약을 조정할 수 있는 권한을 갖게 된다. 중기부가 권력기관이 되고 싶은 의지가 아무리 강하더라도 시행령으로 다른 부처의 법률상 권한을 침해하고 국민의 헌법상 권리를 무시할 수는 없다.

수탁과 위탁은 분업 생산 체제에서 필수적 과정이다. 만약 위원회가 이런 분업 과정에 구체적으로 개입하면 결과적으로 기업들은 분업 생산 체제를 내부화하게 된다. 기업의 사적 경영 사정을 알 수 없는 위원회는 사적 계약의 영역에 개입해 공정과 불공정을 따지기보다는 계약 자체를 보호해야 한다. 기본적으로 조정제도는 두 당사자의 자발적인 수락에 기반을 둔 제도다. 중기부가 법률적 근거도 없이 시행령을 근거로 조정을 강제할 수는 없다. 이는 법률 유보의 원칙을 정면으로 위반하는 것이다.

중기부는 시정명령권을 가지고 이를 따르지 않을 경우 직접적인 제재가 가능하게끔 상생협력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이번 시행령 개정안은 법률 개정이 늦어지자 시행령을 개정해 소기의 통제력을 가지려고 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를 위해 행정·사법·입법의 삼권분립과 견제와 균형의 민주적 법치주의도 허물어뜨리려고 한다. 이렇게 무리를 해서 중기부가 얻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중기부의 존재 이유인 중소벤처기업 육성을 위해 필요한 것은 제재 권한이 아니라 합리적 육성 정책이 아닌가.

더욱이 중기부의 권한 강화로 중소벤처기업들이 더 많은 사업 기회를 얻고 성장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비(非)전문가들의 개입으로 계약 자체가 무산될 수도 있다. 아웃소싱보다는 내부개발을 추진하거나 협력 업체를 외국기업으로 전환할 수도 있다. 중기부는 중소벤처기업 육성을 위해 본연의 업무에 충실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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