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심기의 데스크 시각] 동학개미운동, 왜 삼성전자인가

입력 2020-03-29 18:58   수정 2020-03-30 00:57

“왜 하필 삼성전자를….”

동학과 개미(개인투자자), 삼성전자를 연결한 ‘신조어’는 꽤 낯설다. 구한말 조선의 무능과 부패, 외세에 저항해 일어난 ‘동학농민운동’과 한국의 대표 글로벌 기업 삼성전자의 조합이라니. 삼성전자 주식은 삼성증권 창구를 통해서만 살 수 있다는 황당한 루머까지 퍼질 정도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이 불러온 ‘삼전(삼성전자) 광풍’은 놀랍다. 동학개미운동의 주체가 반기업 정서가 강한 2030세대라는 점도 의외다.

삼전, 대표기업에서 국민기업으로

지난 18일 열린 삼성전자 주주총회는 동학개미운동의 예고편이었다. 청바지를 입은 한 대학생 주주는 “왜 수익성이 높은 항공기용 반도체 사업은 하지 않는 거죠?”라고 당돌하게 따졌다. 또 다른 20대 주주는 “엑시노스(모바일 반도체) 좀 제대로 만들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라는 질문으로 도발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문재인 대통령 앞에서 ‘시스템 반도체 세계 1위’를 자신했는데, 첫 작품치고는 기대 이하라고 꼬집었다. 2000년대 초반 당시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 소장이던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이 목에 핏대를 내면서 삼성의 지배구조를 물고 늘어지던 모습과는 딴판이다.

‘팬데믹 대공황’의 공포를 이겨낸 이기심이 선택한 기업이 삼성전자라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비트코인에 배신당한 젊은이들이 삼성전자 주식에 몰린다는 사실은 무엇을 뜻할까.

주식투자자 커뮤니티 게시판에는 ‘삼성전자가 망하면 나라가 망하는 것’ ‘우리 경제가 지옥에 떨어질 때 삼전은 항상 버텨줬다’는 글이 곧잘 올라온다. 이 중에는 ‘우리 세대에겐 대안이 없다’는 2030의 글도 있다. 최저임금 시급을 받는 아르바이트를 해서 저축한 한두 푼으로 삼성전자 주식 한두 주를 사 모았다는 사연도 꽤 절박하다.

코로나19 사태의 나비효과라고 할까. 2년 전 삼성전자가 50 대 1로 액면분할을 할 당시 내걸었던 국민기업의 모토가 뜻하지 않게 앞당겨지는 모습을 본 삼성 경영진은 “중압감을 느낀다”고 했다. 외국인 투자자나 기관투자가가 주식을 매집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의미다.

다른 기업들도 마찬가지다. 경제심리의 바로미터가 되는 증시를 개미들이 받치는 형국이라면 경제의 펀더멘털(기초체력)을 지키는 건 기업과 기업인의 몫이 됐다. 세계가 빗장을 걸어잠근 와중에도 각국의 입국제한을 풀어달라는 신청서를 외교부에 낸 기업인이 4000명에 달한다. 국경이 속속 폐쇄되는 상황에서도 해외 공장을 돌리고, 수주한 프로젝트를 마치기 위해 앞다퉈 손을 들고 있다. 사지(死地)와 다름없는 전장에 투입되는 병사들과 다르지 않다.

'위기극복 주체=기업'이라는 믿음

지금까지 정부가 보증한 코로나19 음성판정 확인서 한 장을 들고 출국한 기업인 수는 1600명이 넘는다. 외부 충격에 취약한 ‘소규모 개방경제’를 지켜내는 방파제 역할을 해온, 안정된 경상수지와 넉넉한 외환보유액 등 ‘나라 곳간’은 이렇게 기업이 채워왔다.

코로나19 최전선에 서 있는 기업인들의 바람은 뭘까. “이번 위기가 언제 끝날지 모른다. 기업과 기업인에 대해 선의를 갖고 도와달라.” 지난 25일 박복영 청와대 경제보좌관이 주요 업종의 대표 기업 최고경영자(CEO)와 함께한 간담회에서 나온 얘기다. 박 보좌관은 “한국 경제의 근간은 기업이다. 도산을 막고자 전례없는 대책을 과감하게 결정하고 신속하게 행동하겠다”고 했다. 전쟁에서 이기려면 후선이 든든해야 한다. 빈말이 아니길 기대한다. 동학운동은 ‘관군’에 의해 진압당했다.

sg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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