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 명예회장은 1935년 경남 진양(현 진주)에서 구인회 LG그룹 창업주의 동생인 구철회 회장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고려대 법대와 독일 쾰른대에서 법률학을 전공한 뒤 1964년 럭키에 입사하며 경영인으로서 첫발을 내디뎠다. 금성사부터 LG정보통신에 이르기까지 40년 가까운 시간을 LG와 함께했다.
고인은 자주 인생을 등산에 비유했다. 2016년 LIG넥스원 40년사 인사를 통해 “멀리 보이는 산 정상을 길잡이 삼아 한 걸음 목표를 정해 나아가는 모습이 우리의 삶과 닮았다”며 “정상이 높고 풍광이 수려한 산일수록 오르는 길은 험난하기 마련”이라고 했다.
고인의 경영 방식도 등산과 비슷했다. 과묵하고 자신을 내세우지 않는 성품에도 두드러진 발자취를 남겼다. 국내 최초로 홈 자동화 시스템을 적용한 올림픽 훼밀리타운 아파트를 비롯해 한국 최초의 쌍둥이 빌딩인 서울 여의도 LG트윈타워, 인재 교육 요람 LG인화원도 그의 작품이다.
1999년에는 LG에서 계열분리한 LIG손해보험(현 KB손해보험) 회장직을 맡으며 LIG 독립경영시대의 막을 올렸다. LIG손해보험은 손보사 중 홈쇼핑 판매시장에 가장 먼저 진출하고, 방카슈랑스 분야 시장도 선도적으로 개척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2004년에는 LG이노텍의 방위사업 부문을 인수해 방산업에 뛰어들었다. 인수 당시 매출 2000억원 규모던 LIG넥스원은 지난해 매출 1조4526억원을 올렸다. 수주 잔액은 6조원을 넘었다. 단기 수익보다 꾸준한 연구개발(R&D)을 통해 최첨단 무기를 개발한 결과다.
고인은 생전 산과 같은 경영자가 되고 싶다고 했다. 2002년 산악인 고(故) 박영석 대장과 함께 남극 최고봉인 빈슨 메시프로 원정을 떠나면서 “길잡이와 버팀목이 돼 주는 산을 바라보면 포용과 인화를 배울 수 있다”고 했다. 2009년 투병으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뒤에도 “지나치게 매출만 강조해서도, 리스크를 두려워해서도 안 된다”며 “두 눈과 귀를 모두 열어놔야 한다”는 교훈을 남겼다.
고인은 어릴 적 뛰어놀던 진주로 돌아간다. 발인은 31일 오전. 장지는 진주 선영이다. 장례는 유가족 뜻에 따라 가족장으로 치러진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에 마련됐다.
이수빈 기자 lsb@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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