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개미'가 부동산으로 발길을 돌린다면 [여기는 논설실]

입력 2020-03-31 09:30   수정 2020-03-31 14:42


기사 쓸 때 “시중에 자금이 넘쳐난다”는 표현을 많이 써 왔습니다. 하지만 요즘처럼 ‘갈 곳 없는 돈이 이렇게 많았나’ 절감한 경우는 드물었습니다. 주식시장에서 최근 벌어지고 있는 ‘동학 개미운동’ 때문에 든 생각입니다.

올 들어 지난 30일까지 유가증권시장에서 ‘개미’투자자들은 20조1828억원을 순매수했습니다. 언제든 ‘참전’하기 위해 준비해둔 ‘실탄’도 어마어마합니다. 지난 27일 기준으로 증권사 계좌에 쌓인 돈(투자자 예탁금)은 43조9772억원에 달합니다.

개미들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촉발한 최근 증시 조정을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10여년 만에 찾아온 인생역전의 기회로 여기고 있습니다. ‘금융위기 수준의 조정이 또 찾아오면 기회를 놓치지 않으리라’던 다짐을 실천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런 생각도 해봤습니다. ‘시중에 어마어마하게 풀려 있는 자금 중 일부가 매수세가 끊긴 주택시장으로 방향을 튼다면…’

2017년 문재인 정부 들어 쉴 새 없이 달리던 서울 부동산 시장은 지난해 발표된 ‘12?16 부동산시장 안정대책’과 코로나19 사태 ‘2연타’를 맞고 ‘숨 고르기’를 하고 있습니다. 수요가 뚝 끊긴 가운데 코로나 사태 이전보다 싼 값의 매물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물론 “주식과 부동산 투자자들의 성향이나 투자규모 등이 달라 두 시장에 투입된 자금이 각자의 영역을 넘나들지 않는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하지만 시중 유동성을 살펴보는 지표로 많이 쓰이는 광의통화(M2?현금+요구불예금+수시입출식저축성예금+머니마켓펀드 등)의 지난 1월 말 기준 잔액은 2926조원에 달합니다.

동학개미운동에 흘러들어간 자금도 이 중 극히 일부에 불과하지요. 집값을 자극할 촉매가 예기치 않게 나타날 경우 서울 주택시장도 지금의 주식 시장처럼 언제든 뜨겁게 달아오를 수 있을 것입니다.

많은 부동산 전문가들이 지금 시장을 사화산(死火山)이 아닌 휴화산(休火山)으로 봅니다. 이렇게 보는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① 여전한 기대심리

“서울 주요 지역에서 코로나19 사태 이전보다 싼 가격의 매물들이 나오고는 있지만, 그렇다고 가격이 추세적으로 하락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게 현장 관계자들의 설명입니다.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의 경우 전용면적 84㎡짜리는 놓고 매수 희망자들은 19억5000만원, 매도 희망자들은 22억원 이상을 부르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집주인들의 자금사정에 여유가 있어 매수희망자들이 원하는 가격대로 좀처럼 내려오지 않는 분위기라고 하네요. 압구정?반포 등 다른 ‘1급지’들의 분위기도 비슷합니다.

공시가격 인상 등으로 ‘세금 폭탄’이 예고됐는데도 집주인들이 버티는 데에는 결국 ‘집값이 결국은 오를 것’이라는 기대심리가 작용하고 있다고 봐야할 것입니다. 이 같은 기대심리는 지표에도 반영되고 있습니다.

지난 27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3월 주택가격전망지수는 112로 집계돼 2019년 6월 이후 9개월 연속 100을 웃돌았습니다. 이 수치가 100을 넘으면 6개월 뒤 집값이 지금보다 오를 것으로 보는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많다는 의미입니다.

② 더 심해지는 공급난

문재인 정부 들어 한층 강화된 규제 강화로 서울 핵심지역의 입주물량은 갈수록 줄어들 것이 예고돼 있습니다. 부동산 정보업체 부동산지인이 집계한 서울 아파트 입주 및 입주예정 물량을 살펴보면 2019년 6만822가구로 정점을 찍은 뒤 올해 4만6055가구→2021년 2만2073가구→2022년 1만2545가구→2023년 6803가구로 감소할 전망입니다. 서울 부동산 시장이 이대로 흘러갈 경우 2021년부터는 연간 입주물량이 통계가 존재하는 2000년 이후 최소치를 매년 경신하게 됩니다.

문제는 예기치 못했던 코로나19발(發) 경제위기로 이마저도 더 축소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입니다. 주요 건설사들이 경제 위기로 ‘허리띠 졸라매기’에 나설 경우 사업성이 떨어지는 일부 지역의 분양일정은 뒤로 밀릴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③ 더 풀리는 유동성


이미 엄청난 수준인 시중 유동성은 코로나19로 인해 그 규모가 더 커지게 됐습니다. 기준금리가 사상 처음으로 연 0%대로 하락한 것은 집값을 자극할 수 있는 직접적 요인입니다. 추가경정예산이 국회를 통과하기가 무섭게 정부?여당을 중심으로 2차 추경 ‘군불’ 때기도 시작됐습니다.

올해부터 2024년까지 순차적으로 이뤄지는 3기 신도시 토지보상에 역대 최대 규모인 총 35조원이 풀리는 것도 변수입니다. 역사적으로 봤을 때 토지보상금은 다시 부동산 시장으로 흘러들어오는 흐름을 보였습니다. 땅 소유주들은 주식?펀드 등 위험자산보다 익숙한 부동산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지요.

④ 글로벌 금융위기의 기억


이번 사태와 많이 비교되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도 서울 집값이 금융위기 충격으로 조정을 받았던 기간은 6개월 정도에 불과했습니다. 한국감정원의 월간 아파트매매가격지수를 살펴보면 2003년 노무현 정부 출범 이후 2005년 10월∽2008년 9월 한 차례도 떨어지지 않았던 이 지수는 ‘금융위기 충격’으로 2008년 10월∽2009년 3월 조정을 받았지요.

하지만 그 해 4월 반전에 성공해 2010년 2월까지 강세를 이어갔습니다. 2009년 2분기 경제성장률이 전기 대비 3.3%를 나타내는 등 경제가 빠르게 회복된 게 안정의 핵심 요인으로 꼽힙니다.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 같은 사람은 “이번 코로나 사태의 충격이 금융위기 때보다 커 ‘I’자형 경기침체가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대공황 전문가로 2008년 금융위기 극복의 1등 공신이라고 할 수 있는 벤 버냉키 전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은 ‘V’자형 낙관론을 펼칩니다. 만약 버냉키 전 의장이 예측한대로 경기가 회복된다면 이번에도 부동산 시장이 빠르게 회복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번 위기가 국내?외, 실물?금융위기가 한꺼번에 닥친 ‘복합위기’라는 점에서 섣불리 서울 집값의 급격한 회복을 점치는 것은 위험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불안요인들이 수면 아래로 가라앉아 있을 뿐 사태 이전에 비해 오히려 강화되고 있는 측면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내집 마련’을 준비 중인 실수요자라면 시장의 흐름을 딱 맞추려하기보다 자금 현황 등을 감안해 ‘무리 없겠다’ 싶을 때 실행에 옮기는 것도 나쁘지 않은 전략일 것입니다.

송종현 논설위원 screa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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