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채 소화불량 ‘조달위기’
1일 캐피털업계에 따르면 홍콩계 베어링PEA가 대주주인 애큐온캐피탈은 최근 계열사인 애큐온저축은행으로 대출 고객을 유도하고 있다. 애큐온캐피탈의 여신 담당자들을 애큐온저축은행으로 파견하는 등 대응책을 마련한 것으로 알려졌다.
애큐온저축은행을 자회사로 둔 애큐온캐피탈은 그나마 사정이 나은 축에 속한다. 예금을 받아 대출에 투입할 수 있는 저축은행으로 고객을 돌렸기 때문이다. 신한·KB·하나·농협캐피탈 등 금융지주사 계열이거나, 비교적 신용도가 튼튼한 자동차회사 전속(캡티브) 할부금융사도 당장은 여유가 있다. 그러나 유사시 자금을 공급해줄 대주주 여력이 부족하거나, 규모가 작은 업체들은 신규 대출 심사를 강화하는 등 이미 ‘버티기 전략’에 들어갔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캐피털 시장의 자금조달에 ‘이상징후’가 나타난 건 지난달 15일부터다. 이날 키움캐피탈(신용등급 BBB+) 회사채 매수주문 규모가 170억원으로 모집액인 500억원에 한참 못 미쳤다. 이후 여전채 신규 발행은 물론 기존 채권의 차환도 막힌 것으로 전해졌다. 업계 관계자는 “최근 1주일 새 1조원 규모의 캐피털채가 상환되기만 했다”며 “업계 전반에 위기감이 높아졌다”고 설명했다.
채안펀드 ‘급한 불’ 끌까
캐피털업계는 두 번의 ‘큰 위기’를 겪었다. 1997년 외환위기 직후 대기업 여신이 대거 부실화하면서 25개 리스사 중 19개가 무너졌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에도 조달위기를 겪으면서 두산캐피탈 등 대형사들이 대주주가 바뀌는 곡절을 겪었다.
대기업 여신이 대거 은행권으로 옮겨간 2000년대 이후 캐피털사들은 ‘자동차 금융’을 주력 먹거리로 삼았다. 금리가 점점 내려가면서 자본조달이 화두로 떠올랐고, 비상시에 대비해 불용자금을 마련해둔 회사도 늘었다. 이 때문에 코로나19 사태 초기만 해도 ‘상황이 어렵진 않다’는 분석이 우세했다.
그러나 최근 분위기가 바뀌었다. 조달위기가 본격화했고, 코로나19 여파로 실물경기가 나빠져 리스·할부 영업이 위축됐다. 전세버스, 통근버스 등 상용차 할부금융과 공장설비 등 산업 리스를 다루는 회사 사정이 특히 나빠졌다. 한 캐피털사 관계자는 “코로나19 피해자에게 원리금 상환을 유예하라는 정부의 조치가 시행되면 당장 상반기 수익이 기존 사업계획보다 최대 절반까지 줄어들 것”이라고 걱정했다.
정부가 채권시장안정펀드(채안펀드)를 조성해 이달부터 캐피털업계의 자금조달 수단인 여전채를 사주겠다고 한 것도 이런 우려 때문이다. 코로나19로 대출 수요가 커진 중소기업·자영업자의 대출 창구인 캐피털사 부실을 막겠다는 취지다. 업계 관계자는 “2008년엔 최초 조성된 5조원의 채안펀드 중 5000억원을 여신전문회사에 투입했지만, 업계 구조조정을 막을 순 없었다”며 “최대 20조원 규모의 펀드 자금을 여전채에 얼마나 투입할지, 어떤 신용등급까지 물량을 배정할지가 관건”이라고 설명했다.
김대훈/김진성 기자 daep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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