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M&A 마비…제록스, HP 인수 포기

입력 2020-04-01 18:02   수정 2020-04-02 01:27

미국 사무기기 업체 제록스가 프린터·PC 업체 휴렛팩커드(HP)를 인수하려던 계획을 포기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인수 자금을 조달하기 어렵다고 판단해서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세계 인수합병(M&A) 시장이 꽁꽁 얼어붙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31일(현지시간) 주요 외신에 따르면 제록스는 30억달러(약 3조6800억원) 규모의 HP 인수 계획을 중단하기로 했다. 제록스는 “공중보건 비상 상황과 이로 인한 시장 침체로 더 이상 인수를 진행하기 어려워졌다”고 설명했다.

제록스는 지난해부터 HP에 수차례 인수를 제안했지만 거듭 거부당하자 적대적 M&A에 나서겠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당초 제록스는 자금 확보를 위해 글로벌 은행 등으로부터 대출을 받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일본 후지필름과 합작회사인 후지제록스 지분 매각 등을 통해서도 자금을 충당하려고 했다. 그러나 경기 침체로 제록스의 시가총액이 5개월 사이 반토막으로 줄어드는 등 시장 상황이 악화하자 결국 인수 계획을 철회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글로벌 M&A 시장은 크게 위축되고 있다. 이날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지난주 세계 M&A 규모는 125억달러로, 주간 기준으로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4월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지난 1분기 세계 M&A 금액은 6980억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28% 급감했다.

미국 시장이 같은 기간 전년 동기 대비 51% 급감한 2530억달러에 그쳐 가장 타격이 컸다. 레온 칼바리아 씨티그룹 기업고객부문 대표는 “대부분 기업이 M&A 활동의 ‘정지’ 버튼을 누르고 있다”며 “시장이 단기적으로 정체 상태를 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기업들은 직원과 고객을 먼저 생각하고 있다”며 “이런 환경에서 현금으로 M&A에 나설 회사는 거의 없다”고 설명했다.

일부 전문가는 현재 위기가 2008년 금융위기와는 다르다는 점에서 코로나19 사태가 마무리되면 M&A 활동이 다시 회복세를 보일 것으로 전망했다. 로스 에스페랑스 USB 은행부문 공동대표는 “M&A 활동이 둔화됐지만 물밑에서의 대화는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안정락 기자 jr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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