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춘호의 글로벌 Edge] '뉴욕의 아픔'서 코로나를 읽는다

입력 2020-04-02 18:20   수정 2020-04-03 00:18

코카콜라 병을 디자인한 미국 산업디자인계 대부 레이먼드 로위가 뉴욕에 정착한 건 1920년 봄이었다. 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던 프랑스 출신 로위는 부모가 스페인 독감으로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고 군복을 입은 채 곧바로 뉴욕으로 향했다. 당시 뉴욕엔 로위와 같은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뉴욕은 스페인 독감에서 일찌감치 해방된 곳이었다. 미국에서만 67만 명의 사망자를 낸 전염병이었지만 뉴욕 사망자는 4만여 명에 불과했다. 일찌감치 자가격리와 사회적 거리두기를 시행한 덕분이었다. 격리기간도 석 달 이상이나 됐다. 독감을 일찌감치 물리쳤다는 소식을 듣고 유럽 이민자가 몰려들었다. 1920년대 ‘위대한 개츠비’ 시대의 뉴욕은 그렇게 시작했다.

사망 1300여명…美전체 25%

스페인 독감 유행 때 미국에서 가장 먼저 강력한 사회적 격리 정책을 편 건 뉴욕이 아니라 세인트루이스였다. 독감의 첫 유행 시기에 세인트루이스는 세계에서 알아주는 독감 해결 도시였다. 하지만 시당국은 감염자가 줄어들자 거리두기를 완화하는 정책을 폈다. 시민들에게 인기를 끌려는 포퓰리즘이었다. 두 번째로 몰아닥친 독감 유행 시기에 세인트루이스는 속절없이 당했다. 감염자와 사망자가 급격히 증가했다. 세인트루이스는 다시 거리두기 정책을 폈지만 전염병을 근절하는 데 뉴욕보다 더 고생해야 했다.

당시 ‘세계의 공장’으로 불렸던 필라델피아는 최악의 길을 걸었다. 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던 군인들 사이에서 스페인 독감이 퍼지고 있다는 경고에도 불구하고 시당국은 20만 명의 시민이 참가하는 시가지 행진을 펼쳤다. 포퓰리즘 정치의 극치였다. 곧바로 감염자와 사망자가 넘쳐났다. 사망자가 주로 젊은이란 게 치명적이었다. 도시 경제에 차가운 겨울이 찾아왔다. 1920~1921년 전개된 미국의 재고 불황 한파는 필라델피아에서 유독 심했다. 이 도시의 출산율은 급격히 떨어지고 인재가 한동안 모여들지 않았다.

에밀 베르너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 등은 최근 논문에서 스페인 독감 당시 뉴욕처럼 사회적 거리두기와 제한적 조치를 재빨리 취한 도시들이 팬데믹(전염병 대유행)을 탈출했으며 고용이 늘어나고 인재가 유입돼 경제 성장을 이끌었다고 설명한다.

철저한 거리두기가 최고 해법

지금 미국 경제의 상징인 뉴욕이 병들어 있다. 앤드루 쿠오모 뉴욕주지사는 현재 뉴욕이 뉴욕이 아니라고 말한다. 텅 빈 도시와 숨가쁜 앰뷸런스 소리만이 도시를 가로지른다. 2일 오전 기준 뉴욕시의 확진자는 4만7400여 명이다. 사망자만 1300명이 넘었다. 전체 미국 사망자의 25%가 넘는다. 오히려 필라델피아는 이날 기준 15명만 사망했을 뿐이다. 뉴욕에 확진자가 많은 이유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하다. 유럽에서 들어온 여행객 때문에 그렇다고도 하고, 클럽과 바에 사람들이 모여서 그렇다고도 한다. 하지만 사회적 거리두기가 안 지켜진다는 게 가장 큰 이유다.

1913년 포드가 ‘모델 T’로 자동차 대량 생산체제를 시작한 이후 ‘현대(modern)’가 탄생했다. 그 속에 뉴욕이 있었다. 이후 100년이 지난 지금 세계는 코로나19로 흔들리고 있다. 현대의 상징 뉴욕이 신음하는 건 아이러니다. 앞으로의 항로도 불분명하다. 디지털이 대세라는 소리가 있는 반면 글로벌 체제가 파괴될 수도 있다고 한다. 분명한 건 지금 각국이 뉴욕이나 세인트루이스, 필라델피아 중 어느 길을 걸을 것인지 중요한 역사적 전환점에 있다는 것이다. 어려울 때일수록 기본으로 돌아가라는 게 철칙이다.

ohcho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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