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들레 홀씨·알약·돌멩이…장신구에 피어난 '수집 본능'

입력 2020-04-05 18:12   수정 2020-04-06 09:37

파이렉스(Pyrex)는 미국 코닝이 만든 특수유리다. 내열충격성과 화학적 내구성이 뛰어나 이화학용(理化學用) 용기나 관, 내열조리기구에 사용된다. 이 파이렉스로 만든 조그만 구(球) 안에 민들레 홀씨가 들어 있다. 은 막대로 연결된 더 작은 유리공은 도꼬마리 홀씨를 품었다.

서울 인사동 갤러리밈에서 열리고 있는 한국·덴마크 현대 장신구 교류전 ‘수집으로부터-From Collect’에 전시 중인 금속공예 작가 엄세희 씨의 ‘보틀쉽1’이다. 학창 시절 민들레와 독특한 모양의 씨앗을 친구에게 선물 받은 뒤 각종 씨앗을 수집하게 된 엄씨는 한순간 사그라지고 마는 식물의 아름다움을 영원히 간직하고자 장신구로 탄생시켰다고 한다.

갤러리밈과 서울대 금공예회가 공동 기획한 이번 전시는 2017년 양국 수교 60주년을 기념해 열렸던 첫 전시에 이은 두 번째 교류전이다. 현대적인 장인정신과 독창적 예술성을 갖춘 양국 금속공예가 10명이 참여했다. 한국에서는 지난 2월 공예 부문의 세계적 공모전인 ‘2020 로에베(LOEWE) 크래프트 프라이즈’의 최종 후보 30인에 선정된 조성호 작가를 비롯해 김우정 김유정 민복기 엄세희 조가희 조수현 등 서울금공예회 회원 7명이 작품을 내놨다. 덴마크에선 장신구 분야의 유명 작가인 킴 벅과 헬렌 클라라 헴슬리, 얀느 K 한센 등 3명이 출품했다.

전시 주제를 ‘수집으로부터’라고 정한 것은 장신구 작업의 이면에 숨어있는 지극히 사적인 수집의 단계를 끌어내 작업의 결과물인 장신구와 함께 보여주기 위해서다. 정교하고 세련된 장신구 작품들이 작가들의 수집 본능에서 시작된다는 것이다. 레고 조각, 말린 꽃, 포장 박스, 꽃씨, 돌멩이 등 일견 하찮아 보이는 사물들이 작가의 손을 통해 장신구 작품으로 탄생하기까지의 과정을 보여준다. 이를 통해 작가들은 창작의 출발선이 평범한 일상에 있음을 이야기한다.

킴 벅은 혁신적이면서 유머러스한 작업으로 널리 알려진 작가다. 이번 전시에는 유명 휴대폰 패키지 모양의 브로치 ‘iBROACH’를 선보였다. 고가의 상품이 빠져나간 빈 자리를 비어 있는 모습 그대로 당당히 주연으로 등극시킨 발상이 기발하다. 헬렌 클라라 헴슬리는 케이크 바닥 종이나 일회용 스푼 등 하찮고 쓸모없어 보이는 사물에서 얻은 형상을 조합해 이국적이면서 상징적인 패턴의 장신구를 창작한다. 얀느 K. 한센은 할아버지부터 손자까지 3대가 수집한 원석을 한데 모아 펜던트로 담아냈다.

김우정의 ‘Off-spring’은 소유할 수 없는 시간을 무한히 반복되는 거울 공간에 가둬 그 안에 기억이 차오르고 새롭게 피어나기를 소망하는 마음을 담았다. 김유정의 ‘알약 장신구’는 영국 런던에 살면서 한국의 가족이 챙겨 보낸 알약 모양을 담녹색의 반투명 광물인 프리나이트로 재현해 가족의 사랑을 유통기한 없이 간직하고 싶은 마음을 담아냈다. 버려진 레고블록을 장신구로 재탄생시킨 조성호의 ‘Color Combination’도 시선을 끈다.

어린 시절 우표를 수집했던 조가희는 우표 절취선 구멍을 형상화한 ‘Rows of Holes’를, 이번 전시를 기획한 민복기 교수는 신체적 상해의 트라우마를 극복해 내는 과정을 담은 작품을 출품했다.

문화체육관광부, 서울시, 서울문화재단, 덴마크문화재단이 후원하는 이번 전시는 오는 26일까지 이어진다.

서화동 선임기자 firebo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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