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가 100만 명을 돌파하고 사망자도 5만 명이 넘어서자 주요국들이 비상조치를 강화하고 있다. “의료장비 부족으로 사망자가 더 빠르게 늘어날 것”이란 우려가 나오자 각국이 의료장비 쟁탈전에 나섰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일(현지시간) 제너럴일렉트릭(GE) 등에도 국방물자생산법(전시물자동원법)을 발동해 “인공호흡기를 만들라”고 명령했다.
뉴욕 “인공호흡기 재고 6일치뿐”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행정메모를 통해 GE, 힐롬홀딩스, 메드트로닉스, 레즈메드, 로열필립스, 바이에어메디컬 등 6개사에 인공호흡기 생산을 지시했다. 지난달 27일 GM과 포드 등에 인공호흡기 생산을 명령한 지 1주일 만에 다시 비상조치를 꺼낸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3M에도 안면 마스크를 생산하도록 했다.
미국 상황이 그만큼 절박하기 때문이다. 통계 사이트 월도미터에 따르면 2일 밤 12시 기준 미국 코로나19 확진자는 24만5000여 명으로 전 세계 확진자(100만여 명)의 24%다. 하루 만에 3만 명가량 늘었다. 사망자도 하루 만에 1000명가량 늘어 6000명을 넘었다.
미국에서 확진자가 가장 많은 뉴욕주의 앤드루 쿠오모 주지사는 기자회견에서 “인공호흡기가 필요한 환자가 (병원에) 왔는데 인공호흡기가 없으면 죽을 수밖에 없다”며 “그런데 현재 재고가 6일치밖에 없다”며 장비 지원을 호소했다. 쿠오모 지사는 지난달엔 “(우리는) 마스크를 구매하려고 캘리포니아, 일리노이, 플로리다주와 경쟁하고 있다”며 “‘바가지 가격’이 심각한 문제가 됐다”고 했었다.
미국 탐사보도 전문매체 ‘프로퍼블리카’는 뉴욕주 자료를 인용해 마스크 구입 가격이 통상 가격의 15배인 개당 7.5달러에 달했고, 평소 5센트 미만이었던 장갑은 개당 20센트로 뛰었다고 2일 보도했다. 장비 부족이 문제가 되자 아마존은 이날 “N95 마스크, 외과용 마스크, 안면보호대, 의료 가운, 의료 장갑, 대규모 세정제에 대해 의료진 우선 공급을 위해 일반 판매를 중단한다”고 밝혔다.
기업들의 피해도 속출하고 있다. 월트디즈니는 직원들의 무급휴직을, 보잉은 일부 공장의 가동중단을 결정했다. 애플은 미국 내 270개 소매점 영업을 5월 초까지 중단키로 했다.
“공항에서 3배 웃돈 주고 마스크 빼가기”
미국은 해외에서도 의료장비 쟁탈전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영국 가디언에 따르면 프랑스 의사이자 그랑데스트 지방의회 의장인 장 로트너는 한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중국에서 프랑스로 들여오던 마스크 수백만 장을 상하이 공항에서 미국 업자들에게 빼앗겼다고 했다. 마스크를 비행기에 싣기 직전 미국 업자들이 나타나 프랑스가 낸 돈의 3배를 내겠다고 제시하면서 거래가 막판에 깨졌다는 것이다. 미 국무부 당국자는 “보도 내용은 완전 거짓”이라고 반박했지만 논란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는 캐나다에도 유사사례가 있는지 확인해볼 것을 지시하며 “캐나다가 목적지인 장비는 캐나다로 들어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루이스 엔히키 만데타 브라질 보건부 장관은 전날 기자회견에서 “미국은 오늘 가장 큰 화물기 23대를 중국에 보내 그들(미국)이 확보한 물자를 실어갔다”며 중국으로부터 보호장비를 들여오려던 브라질의 시도는 실패했다고 밝혔다.
프랑스, 독일, 러시아 등은 의료장비 수출을 금지했다. 터키 정부는 벨기에가 사들이기로 한 마스크 수출을 가로막았다.
일본 정부는 인공호흡기와 에크모(심폐호흡장치) 생산업체에 긴급 증산을 요청했다. 병실 부족에 대비해 증상이 약한 환자는 호텔에 수용하기로 했다. 고이케 유리코 도쿄도지사는 올림픽 연기로 빈 올림픽 선수촌아파트에 경증 환자를 수용하는 방안도 제시했다. 도쿄 내 입원 환자 수는 2일 밤 기준 628명으로 중환자 수용능력(700실)의 90%가 찼다. 도쿄도는 수용능력을 4000실까지 늘리기로 했지만 일본 정부는 도쿄에서만 감염자가 2만 명에 이를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워싱턴=주용석/도쿄=정영효 특파원 hohobo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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