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현금 살포가 어떻게 사회 타락시키나 보여주는 '지원금 소동'

입력 2020-04-03 17:49   수정 2020-04-04 00:05

정부가 어제 긴급재난지원금 지급 대상을 3월 건강보험료 기준 소득 하위 70% 가구로 결정했다. 이에 따라 4인 가족 기준 직장가입자 가구는 건강보험료 23만7652원 이하면 100만원을 받을 수 있게 된다. 정부는 “최신 소득자료를 활용할 수 있고 모든 국민의 자료가 작성돼 있는 건보료가 가장 타당한 기준이어서 이를 토대로 지급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각론으로 들어가면 모호하고 불명확한 부분이 한둘이 아니다. 고액 자산가를 뺀다지만 ‘고액’의 기준이 정해진 게 없다. 종합부동산세 대상자 포함 여부도 미정이다. 코로나19 여파로 소득이 급감한 소상공인·자영업자에게 준다지만 언제 어떻게 할지도 결정된 바 없다.

형평성도 문제다. 각 지방자치단체의 재난지원금과 중복 지급 여부에 대해 명쾌한 기준이 없어 자칫 지자체 예산상황에 따라 받는 돈이 몇 배씩 차이가 날 수도 있다. 월급 1만~2만원 차이로 지원금을 받고 못 받는 가구 간 소득 역전 문제도 있다. ‘소득 감소가 없는 봉급생활자들까지 받는 게 옳으냐’는 지적이 있는가 하면, ‘이럴 바에야 전 국민에게 지급하라’는 주장도 나온다.

정부는 세부기준을 차차 마련하겠다지만 난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미지수다. 지급시기 역시 불투명하다. 서둘러 발표한 지급기준도 그렇지만 사실 더 중요한 문제는 따로 있다. 지금이 어떤 때인가. 외환위기와 금융위기를 뛰어넘는 혹독한 장기 불황이 이제 막 시작된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까지 나온다.

그런데 국민의 관심은 온통 ‘돈 100만원’에 쏠려 있다. 모처럼 공돈이 생길까 은근히 기대하는 이들도 있고, 혹시라도 억울하게 못 받을까봐 눈에 불을 켜는 이들도 많다. 외환위기 때 우리 국민은 ‘금모으기’까지 하면서 그 혹독한 시련을 이겨냈다. 지금이 그때보다 더 큰 위기일 수도 있는데 나라를 구해냈던 공동체 의식과 사회적 연대감은 찾아보기 힘들다.

진정 의식 있는 중산층이라면 성금을 내고 십시일반으로 기부라도 해야 할 때가 아닌가. 그런데 하위 70%에 속하니 마니, 얼마를 받느니 따위에 온 나라가 정신이 팔려 있다. 무엇이 국민을 이렇게 만들고 있나. 펑펑 뿌려대는 ‘현금살포 정치’가 만들어낸 비극이다. 실정을 덮고 국민 불만을 달래기 위해, 그리고 선거 승리를 위해 돈으로 국민의 눈과 귀를 가리고 있는 것은 아닌가. 국민도 반성해야 한다. 정치인·지자체장들이 자기 돈이라면 그렇게 퍼주겠는가. 모두 국민이 낸 피 같은 세금이요, 우리 자식들이 허리가 휘도록 갚아야 할 빚으로 충당하는 돈이다.

재난지원금 소동은 현금살포 정치가 어떻게 사회를 타락시키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국민이 깨어나야 한다. 그래야 이런 일이 되풀이되지 않고 쓰러져가는 경제도 살려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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