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온라인 여행사의 甲질

입력 2020-04-03 17:32   수정 2020-05-22 16:16

“이런 게 ‘먹튀’가 아니고 뭡니까.”

여행업계는 요즘 뭔가가 ‘툭’ 터질 것 같은 분위기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빈사상태에 빠진 게 현실. 살아남기가 지상 최대 과제인 이들의 심기를 글로벌 온라인여행사(OTA)들이 한 번 더 건드렸다. 벼랑 끝 위기에 몰린 여행업계의 절박함을 외면하고 고통 분담에는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는 게 업계 주장이다. “어려울 때 먼저 손을 내미는 ‘착한 동업자’가 누구인지 확실히 알게 됐다”는 말이 업계에서 나온다.

항공권 검색 플랫폼회사 스카이스캐너가 뭇매를 맞는 대표적인 OTA 공룡. 업계에서는 ‘전형적인 먹튀’라는 극단적 비난이 끊이지 않고 있다. 취소 항공권의 중개수수료를 일부 환불해 달라는 여행사들의 요청에 “본사 방침이 서지 않았다”는 말만 되풀이하며 명확한 답을 내놓지 않고 있어서다.

스카이스캐너는 항공권 판매 시장에서 점유율이 50%가 넘는 절대 강자다. 이런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지난해 여행사로부터 받는 1.3%의 중개수수료를 1.7%로 30%나 인상했다. 울며 겨자 먹기로 여행사들은 서너 달 전 판매한 항공권의 중개수수료를 이미 스카이스캐너에 지급했다. 하지만 최근 항공권 취소가 쏟아지면서 여행사들은 팔지도 않은 항공권 수수료를 스카이스캐너에 먼저 내준 꼴이 됐다. 여행사들이 떠안은 수수료만 수십억원에 달한다.

일찌감치 발을 뺀 ‘깍쟁이’라는 평가를 받는 곳도 있다. 익스피디아와 아고다, 호텔스닷컴, 트립닷컴 등 거대 글로벌 기업들이다. 항공권과 호텔, 렌터카, 액티비티 등을 판매하는 이들은 코로나 사태로 예약 취소가 몰리자 발 빠르게 환불 안내를 시작했다. 그러면서 “자신들은 중개만 하는 플랫폼일 뿐 환불 책임은 없다”는 말도 깨알같이 붙였다. 업계에서는 “곤란한 상황에서 발 빼기에 급급했다”는 지적이 쏟아진다.

모든 글로벌 OTA가 이런 건 아니다. 공유숙박회사 에어비앤비는 코로나 피해를 입은 호스트(공유숙소 제공자)를 위해 2억6000만 달러(약 3200억원)의 구호기금을 마련했다. 예약 취소 환불금의 25%를 본사가 지원하고 호스트에게 최대 600만 원이 넘는 지원금을 제공한다. 4000여 명 에어비앤비 임직원은 코로나19 구호기금 마련을 위해 1000만 달러(약 123억원)를 모금했다. 지원대상에는 수천여 명의 한국 호스트도 포함됐다. 에어비앤비 공동 창업자이자 CEO인 브라이언 체스키는 전 세계 호스트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지금은 말보다 실질적인 행동이 필요한 때”라며 ‘착한 동업자’로서 책임을 강조했다.

액티비티 플랫폼회사 클룩은 고객과 머천트(상품 공급자) 간 위약금 갈등을 최소화하기 위해 100% 환불 조치를 취하고 수수료를 감면, 면제하는 방식을 취했다.

여행업계에선 그동안 글로벌 OTA와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경쟁을 벌이고 있다는 불공정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이들은 국내 시장에서 상품을 편하게 팔고 막대한 이익을 챙긴다. 하지만 가격표시제, 환불정책 등은 국내 법망에서 비껴서 있다. 한 국내 여행 업체 대표는 “상생보다 자신들의 피해 줄이기를 우선할 거라는 건 이미 예견됐던 일”이라면서도 “앞으로도 이런 일이 계속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는 게 솔직히 더 씁쓸하다”고 말했다.

seonwoo.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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