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적 대설보다 더 쉽게 독자들의 삶에 다가갈 수 있다고 격려해주는 지인들이 많아 출판을 결정하게 됐다는 소설집 《슬픈 쥐의 윤회》는 도올 소설의 매력을 짐작하게 한다. 자전(自傳)의 짙은 향내와 더불어 시대 증언을 놓치지 않는다.
13편의 소설 중 ‘의혈유서(義血由緖)’가 대표 격이다. 2003년 가을학기부터 시작한 중앙대 석좌교수 시절 얘기가 419혁명과 이어진다. 서울 흑석동 캠퍼스에 서 있는 의혈탑(義血塔)에 얽힌 비사(秘史)는 올해 60주년을 맞는 4·19혁명을 역사에서 지금 여기로 불러온다.
의혈탑에는 조병화 시인(1921~2003)이 쓴 시구가 새겨져 있다. ‘우리들은 남으로부터 싸워 올라가/ 마침내 사월학생혁명 그 대열에/ 기를 높이 올렸다/ (…) /그리하여 여섯 명의 벗을 잃었으니/ 아! 슬프도다 4월이여! 광영이여!/ 벗의 이름으로 끝이 없어라.’
‘의혈 중앙’의 기치를 드높인 이 기념시의 원래 제목은 ‘사월’이었다. 당시 총학생회장이었던 박명수 11대 중앙대 총장은 조 시인에게 탑의 비문과 이름을 부탁했고 답변은 이러했다.
“무슨 탑이라고 고정되어버리면 해석의 여지가 없어져. 그냥 ‘사월’이라고 한글로 써놓게. 사월! 사월! 얼마나 아름다운가? 사월이 되면 이 조선 금수강산의 꽃은 남으로부터 피어오르네. 4월 혁명도 마산 김주열 군의 죽음으로부터 시작해서 남으로부터 피어올랐어.”
그러나 박 총장은 조 시인의 의견을 묵살하고 의혈탑이라고 명명했다. ‘우리 학우들이 피를 흘리고 죽어간 마당에 한가롭게 사월이라고? 참 시인의 감성은 저렇게 연약하다니깐’ 하고 말았다는 것이다. 그해 9월 제막식에서 제목이 바뀐 것을 본 순간 조 시인은 슬픈 얼굴로 식장을 걸어 나갔고, 나중에 박 총장은 ‘의혈보다는 사월이 더 나은 이름’이라고 후회했다는 얘기다.
역사라는 것은, 어떤 점에서는 자전적인 것이라는 말이 있다. 나와 너의 이야기를 엄정한 기록으로 남기는 일은 그래서 중요하다. 문화재청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의 차기 신청 대상으로 ‘4·19혁명기록물’과 ‘동학농민혁명기록물’을 선정해 우리 모두가 공유해야 할 두 역사의 뜻을 되새기려 한다.
식민지였던 국가 중 최초의 민주화 운동이며 세계적 학생운동의 시발점이었던 4·19혁명은 한반도의 사월을 들어 올리는 큰 울림이다. 사월이라고 부르고 혁명이라고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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