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가을께 의료진 백신 접종…中, 5000명 곧 임상 돌입

입력 2020-04-05 17:19   수정 2020-10-16 15:39


“올가을이면 의료진 접종을 시작할 수 있다.”(스테판 밴슬 모더나 최고경영자) “중국은 백신 개발에서 어떤 나라에도 뒤지지 않을 것이다.”(왕준즈 중국공정원 원사)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전 세계를 강타한 뒤 백신 및 치료제 개발 경쟁도 치열하다. 백신을 먼저 개발하면 자국민 보건을 더 빨리 챙길 수 있을 뿐 아니라 경제 주도권도 가져갈 수 있어서다. ‘무제한 돈풀기’(양적완화)를 주도하고 있는 제롬 파월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도 “최우선 과제는 바이러스 확산을 통제하는 것”이라며 “경제활동은 그 이후”라고 말했다.

미국서 신약 280여 건 개발 등록

코로나19에 대항하는 약품은 감염을 예방하는 백신과 환자를 회복시키는 치료제로 구분된다. 미국 국립보건원(NIH)과 유럽에 본부를 둔 전염병예방혁신연합(CEPI), 각국 정부 등이 막대한 예산을 투입해 백신·치료제 개발을 지원하고 있다. NIH에 따르면 5일 현재 백신 5건을 포함해 총 287건의 코로나19 관련 신약이 임상시험을 시작했거나 지원자를 모집 중이다.

건강한 사람이 코로나19에 감염되는 것을 막는 가장 유효한 방패는 백신이다. 몸속 면역계가 바이러스와 싸우는 힘을 키워 감염을 막거나 증상을 줄여주는 원리다.

백신 부문에선 미국의 속도가 빠르다. 선제적으로 인체 대상 임상시험에 들어갔다. 미 제약사 모더나는 NIH와 공동 개발한 코로나19 백신을 지난달 16일 인체에 주사했다. 안전성을 점검하는 동물실험마저 생략했다. 건강한 18~55세 남녀 45명을 대상으로 총 6주 동안 임상1상을 진행할 계획이다. 참가자들은 1개월 간격을 두고 다른 용량의 백신을 두 번 맞게 된다. 백신이 인체에 안전한지와 목표한 반응이 나타나는지를 확인한다.

NIH는 백신 개발에 18개월 정도 걸릴 것으로 보고 있다. 이마저도 많은 절차를 단축해 위험할 정도로 빠른 속도라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일반적으로 백신을 개발하려면 10~15년간 1조원 넘는 비용을 투입해야 한다. 2003년 유행했던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와 2015년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에 대응하는 백신은 아직도 개발하지 못했다. 사스 백신은 33개 후보군 중 2개만 인체 대상 임상에 착수했다. 메르스 역시 48개 가운데 3개만 임상에 들어갔다. 그만큼 중도 실패 사례가 많다는 의미다.

NIH가 예상한 18개월도 다양한 조건을 모두 충족해야 맞출 수 있는 목표다. 임상 3단계인 ①소수의 건강한 사람 ②코로나19가 확산한 지역의 건강한 다수 ③코로나19가 확산한 지역의 일반인 다수 등에서 최소 6개월씩 시험을 통과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만 밴슬 모더나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의료진 등에게 임상 미완료 백신을 투여할 수 있는 ‘긴급처방허가’ 절차도 밟고 있다”고 말했다. 긴급처방허가는 코로나19처럼 특별한 경우에 처방 대상 의료진의 동의와 미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받으면 백신을 주입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밴슬 CEO는 “코로나19 환자를 하루에도 수십 명씩 접촉해야 하는 의료진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긴급처방허가를 최대한 활용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한국계 과학자 조셉 김 박사가 이끄는 이노비오도 이달 중 백신의 임상1상에 들어갈 예정이다. 존슨앤드존슨은 오는 9월에 임상1상을 계획하고 있다. 이 회사는 긴급처방허가를 통해 내년 초 의료진에게 공급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영국계 글락소스미스클라인, 프랑스 사노피 등 글로벌 제약사들도 백신 개발에 뛰어들었다.

중국은 임상 자원 5000명 확보

코로나19 진원지인 중국도 뒤질세라 지난달 20일 건강한 우한 시민 108명을 대상으로 인민해방군 연구진이 개발한 코로나19 백신의 임상1상에 돌입했다. 왕준즈 중국공정원 원사는 “중국은 미국보다 유연하면서도 국가적 자원을 집중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어 백신을 조기에 출시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중국공정원은 한국의 공학한림원과 같은 이공계 석학 그룹으로, 원사는 정회원에 해당한다.

인민해방군의 백신 개발은 중국공정원 원사이자 군사의학연구원 소속 연구원인 천웨이 소장이 이끌고 있다. 천 소장은 2017년 세계에서 세 번째로 에볼라 백신을 개발한 경험이 있다.

중국 지도부는 일찌감치 인민해방군 과학자들에게 세계에서 가장 먼저 코로나19 백신을 개발하도록 지시했다. 비상시 일정한 범위 내에서 필수 임상시험 단계를 건너뛸 수 있도록 한 중국 의료법도 최대한 활용한다는 방침이다. 우한 지역에서만 5000여 명의 실험군을 확보해놓은 상태다. 지방정부와 연구소, 바이오기업 등이 개발 중인 백신 9종이 이달 임상에 들어갈 예정이다.

말라리아 치료제 효능에 주목

코로나19 치료제 개발은 이미 판매 중이거나 개발 중인 약물에서 효능을 찾는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신약보다 개발 비용과 기간을 크게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주목받은 치료제는 말라리아에 쓰이는 클로로퀸(유사 약물인 하이드록시클로로퀸 포함)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지난달 19일 기자회견에서 ‘게임 체인저’(판도를 바꾸는 것)라고 불렀던 약품이다.

미 FDA는 지난달 29일 클로로퀸을 비상시에 코로나19 대응 약물로 쓸 수 있도록 승인했다. 프랑스와 이탈리아 보건당국도 클로로퀸을 중증 코로나19 환자 치료에 쓸 수 있도록 허가했다.

사스 유행 당시 효과를 보인 에이즈 치료제 칼레트라도 중증 환자에게 쓰이고 있다. 바이러스가 증식할 때 필요한 효소(단백분해효소)를 억제하는 성분인 로피나비르와 리토나비르를 합성한 약물이다.

신약 가운데 진전이 빠른 약물은 미국 길리어드가 에볼라 치료제로 개발해 임상2상까지 마친 렘데시비르가 있다. 길리어드는 한국과 중국, 미국 등에서 환자 1000여 명을 모집해 마지막 임상3상을 하고 있다. 중국은 “이달 중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호언하고 있다. 다른 나라 결과도 다음달이면 나올 전망이다.

렘데시비르는 이미 임상 전 세포·동물실험에서 코로나19에 항바이러스 효과가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강현우/이지현 기자 hk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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