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미국에서는 삶을 돈으로 환산해 보려는 시도가 있었다. 병원과 공원 등 공공 인프라 투자에 앞서 그에 따른 비용과 편익을 판단하기 위해서였다. 저울의 한쪽 편에는 인프라 투자에 들어가는 비용이, 반대편에는 그 편익으로서 지역주민의 삶을 돈으로 환산한 가치가 올라갔다. 저울의 균형추가 어디로 기우느냐에 따라 투자 여부가 결정됐다.
삶을 계산하는 데는 개인이 일생 동안 벌어들일 수 있는 재화의 크기에 더해 살아가는 동안 향유할 즐거움의 가치까지 포함됐다. 이런 기준을 적용하자 이용자 전체의 삶의 가치가 어마어마하게 불어났다. 보건경제학 전문가인 홍석철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평가 기준 등에 따라 다르지만 ‘삶의 가격’이 1인당 최대 960만달러(약 117억원)까지 책정되면서 공공 인프라가 모두 건설해야 할 것으로 분류되는 일이 벌어졌다”며 “재정 부담을 감당하지 못한 미국 정부가 삶의 가치를 절반으로 잘라 반영하기로 하면서 또 한 번 논란을 낳았다”고 말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을씨년스럽게 변한 미국 뉴욕의 풍경은 이 같은 계산 왜곡의 결과이기도 하다. 삶의 가치가 추상적이란 이유로 과소평가하면서 병상을 비롯한 의료 인프라에 대한 투자를 줄였기 때문이다. 정확한 계산이 코로나19 자체를 막지는 못했겠지만, 대응 과정의 혼란을 줄였을 것이라는 점은 틀림없어 보인다.
한국의 공정거래위원회도 가치를 계산하는 시험을 치르고 있다. 배달 앱 서비스 ‘배달의민족’을 운영하는 우아한형제들과 ‘요기요’ ‘배달통’ 운영사인 딜리버리히어로의 합병 승인 여부를 놓고서다.
이번에는 독과점이 저울의 비용 쪽에 올라갔다. 2018년 세 업체의 점유율을 합하면 100%에 육박한다. 합병 승인은 곧 독점사업자의 등장으로 이어질 수 있다. 반대쪽인 편익에서 무게를 달아야 할 것은 추상적 가치인 혁신이다.
공정위는 일단 배달 앱 서비스 탄생에 따른 소비자 복리 증진 정도를 가치 측정을 위한 척도로 보고 있다. 혁신이 현재진행형이라는 점도 고려사항이다. 시장이 성장하고 있어 언제든 신규 사업자가 뛰어들어 점유율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것이다. 전자상거래 업체인 G마켓과 옥션의 2009년 합병이 단적인 예다. 합병 직후 두 업체의 시장 점유율은 90%에 가까웠지만 신규 사업자가 계속 진입하면서 10년이 지난 작년 말 점유율은 12%, 시장 순위는 3위로 떨어졌다. 조성욱 공정위 위원장이 “합병 승인 심사 과정에서 혁신의 가치를 가볍게 봐서는 안 된다”고 자주 강조하는 사례다.
그럼에도 균형추가 혁신의 편익으로 기울기는 쉽지 않다. 편익의 현실화까지는 시간이 걸리는 반면 비용에 대한 비판은 즉각적이다. 이재명 경기지사가 연일 우아한형제들을 비판하며 자체 서비스를 내놓겠다고 밝히고 있다. 자영업의 어려움을 배달 앱에서 찾는 이들까지 나타났다.
혁신의 가치로 편익을 측정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공정위 심사위원들의 고충이 클 것이다. 하지만 그 가치가 추상적이라는 이유로 과소평가하면 미국 의료 인프라 투자에서 보듯 후세에 큰 비용으로 돌아오게 된다. 측정할 저울을 설계하는 데 세심함을 기울여야 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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