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21세기 美·中에 남겨진 로마와 진·한 '제국 DNA'

입력 2020-04-09 18:17   수정 2020-04-10 03:14


제국의 생애는 사람과 닮았다. 처음에는 갓난아기처럼 작고 여리다. 10대 청소년 같은 질풍노도의 시기를 거쳐 20~30대의 에너지로 활동 범위를 넓힌다. 40~50대의 성숙기를 거쳤다가 노인이 되고, 마지막엔 스러진다. 사람이 자녀를 통해 대를 이어 가듯, 제국은 또 다른 제국의 토대가 된다.

동·서양의 대표적 제국인 중국 진(秦)·한(漢)과 로마를 다룬 두 권의 책이 출간됐다. 《하버드 중국사 진·한: 최초의 중화제국》과 《용과 독수리의 제국》이다. 두 책은 ‘제국의 생애’를 탄생부터 멸망까지 꼼꼼하게 소개한다. 전자는 서구 학자들이 진·한의 흥망성쇠를 서술했고, 후자는 중국 학자가 진·한과 로마를 비교·대조했다. 인물 중심의 서사가 아니라 법률과 문화, 도시의 구성, 당대인의 생활 등 다양한 분야를 파고든다. 함께 읽으면 마치 서로가 거울을 보고 이야기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하버드 중국사 진·한: 최초의 중화제국》은 ‘중국을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주제로 미국 하버드대가 중국 전문가들을 모아 특별 기획한 ‘하버드 중국사 시리즈’ 중 하나다. 티모시 브룩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 교수가 시리즈의 책임 편집을 맡았고, ‘진·한’ 편은 마크 에드워드 루이스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가 집필했다. 기존의 한족(漢族) 중심 서사에서 벗어나 진·한의 이웃이자 적이던 흉노제국의 역사도 비중 있게 논한다. 황실과 엘리트뿐만 아니라 농촌 주민과 그 가족 형태도 집중 분석한다.

저자는 진·한이 어떤 방식으로 제국이 됐는지 읽을 수 있는 다섯 가지 기준을 제시한다. 뚜렷한 지방색, 황제를 중심으로 한 정치 구조, 문자의 통일과 국가가 공인한 경전(經典) 보급, 제국 내부의 비무장화, 조정과 지방을 연결한 유력 가문이다. 진·한은 거대한 영토에서 각자의 개성을 완고히 지키며 살아온 지방 주민을 포용했다. 하늘과 땅 사이의 중재자로서 신성시된 황제란 인물상을 창조해 중앙집권 체제를 마련했다. 통일 전 전국시대 7개국이 각각 달리 썼던 문자와 도량형을 단일화해 일상의 혼란을 막았다. 변방의 다른 민족들에게 군인 임무를 맡기고 중심부는 철저히 비무장화해 반란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했다. 유력 가문들은 서로 네트워크를 형성해 조정과 지방을 장악해 황제를 보좌했다.

《용과 독수리의 제국》은 화교로 MIT 물리학과 교수를 지낸 어우양잉즈가 썼다. 용은 진·한을, 독수리는 로마를 상징한다. 저자가 역사를 전공하지 않았다는 게 오히려 장점으로 작용한다. 지정학적 위치, 종족 구성, 조세제도 등 다양한 분야를 넘나들며 두 제국을 논한다.

진·한과 로마 제국은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았다. 진은 기원전 771년 주나라 황실에서 제후국으로 책봉된 뒤 경쟁국을 하나하나 통합하며 기원전 221년 진시황의 시대를 열었다. 진제국은 15년 만에 망했지만 그 뒤를 곧바로 한나라가 이었다. 로마는 작은 마을에서 시작해 공화정이 성립되고, 제국으로 성장했다.

진·한과 로마 제국 모두 외부의 공격이 아니라 내부의 부패로 무너졌다. 하지만 후대에 남긴 유산은 엄청나다. 진·한 시기 확립된 유가사상과 황제 중심 통치 방식은 중국의 역대 왕조에 대대로 이어졌다. 로마가 기틀을 다진 기독교와 법률 체계 등은 유럽 문명의 토대가 됐다.

이 책은 후반부에서 21세기 미국과 중국을 진·한과 로마에 대입시킨다. 저자는 미국이 세계사의 68번째 제국, 현대 중국은 69번째 제국이라고 주장한다. ‘팍스 아메리카나’를 주창하는 미국, ‘굴기’를 선언하며 세계의 중심이 되고자 하는 중국이 다시 ‘독수리’와 ‘용’이 될 수 있을지 궁금해한다.

두 책은 제국이란 키워드로 연결되지만 집필 취지와 서사의 색채는 완전히 다르다. 《하버드 중국사 진·한: 최초의 중화제국》은 가능한 한 오리엔탈리즘을 배제하고 건조한 문체로 진·한 시대에 국한해 서술한다. 중국사에 어느 정도 배경지식이 있는 독자라면 흥미롭게 읽을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독해에 꽤 높은 장벽으로 다가올 수 있다. 《용과 독수리의 제국》은 활달한 문체로 진·한과 로마를 가로지른다. 일반 독자를 아우르는 폭은 넓지만, 중국 제일주의의 색채에서 자유롭지는 못하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이미아 기자 mi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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