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만 보고 퍼붓는 재난지원금
비슷한 편 가르기 잣대로 2000년대부터 노동계와 진보진영이 사용해온 ‘20 대 80 사회’가 있다. 한스 페터 마르틴과 하랄트 슈만이 1997년 출간한 《세계화의 덫》에 나온 용어다. 21세기에는 노동 인구 중 20%만 있어도 경제가 유지되며 나머지 80%는 더 가난해지고 중산층은 몰락한다는 전망이다. 계층 간 양극화를 설명하는 데 이런 이분법은 계속 활용됐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남성과 여성, 대기업과 중소기업, 고학력과 저학력…. 양극화 프레임은 ‘차별과 불평등’을 이슈화하는 데 성공했다.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 시정이 주된 내용인 비정규직 보호법이 2006년 국회를 통과한 배경이다.
양극화의 원인에 대해선 견해가 갈린다. 노동계는 재벌과 대기업을 지목하는 반면 경영계는 강성 노조를 꼽는다. 날 선 공방 속에 국책연구기관인 한국노동연구원이 내놓은 노동시장 분석 자료는 많은 것을 시사한다. 노동시장을 대기업·정규직·유노조 사업장(A그룹)과 중소기업·비정규직·무노조 사업장(B그룹)으로 나눴다. 2018년 기준으로 근로자의 7.2%(145만 명)인 A그룹의 월평균 임금은 424만원이다. 27.4%(549만 명)인 B그룹은 152만원이다. 세 배 가까이 차이 난다. 국민연금은 A그룹의 98.8%가 가입된 반면 B그룹은 30.7%에 그친다. 고용보험 가입률은 99.7% 대 39.9%다. 일자리의 안정성을 보여주는 평균 근속연수 차이는 더 크다. A그룹은 13.7년인 데 비해 B그룹은 2.3년이다. 한 직장에서 채 3년을 못 채우고 빈번하게 이직과 실직을 반복한다는 의미다.
자식에게 빚더미 떠안기는 꼴
재난의 고통이 더 극심한 사람들이 누구일지는 짐작이 간다. 하지만 ‘하위 70%’ 기준이 제시된 이후 정치적 셈법이 작동했다. 정치권은 재난지원금을 누구는 받고 누구는 못 받는 문제로 바꿔놨다. 외환위기 때 금모으기까지 나섰던 국민은 졸지에 치사한 사람들이 되고 말았다.
지급 대상 확대에 서로 맞불을 놓으며 여야는 선거에서 이해득실을 따지는 모양새다. 곧 들이닥칠 ‘세대 간 양극화’는 안중에 없다. 산업화와 경제 발전으로 단군 이래 최대 수혜를 누렸다는 5060세대와 달리 청년과 미래 세대는 가혹한 빚더미를 안게 됐다. 이미 2019년 국가부채는 1743조원으로 1인당 1410만원에 이른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재정적자는 반영도 안 된 수치다. 여기다 당장 올해 출생아 수가 20만 명대로 주저앉는다. 1960년대 연간 출생아 수 100만 명대에 비하면 3분의 1도 되지 않는다. 1인당 국가부채는 더하기가 아니라 곱하기로 늘어날 판이다.
정치권에 의해 세대 간 양극화의 주범이 되고 만 5060세대의 낯빛이 무섭다. 당장 내 세금이 들어가는 것도 모자라 자녀들에게 가혹한 빚까지 얹겠다는 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 세대다. 정치인들은 선거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는 항상 유권자를 우습게 보는 경향이 있다.
jsc@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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